제주시에 출마한 후보가 공약했다. 해저 터널을 이용한 KTX 사업 추진이다. 제주도~추자도~보길도~해남~목포를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터널의 제주 쪽 기점은 자신의 지역구인 애월항으로 지목했다. 처음 나온 터널 얘기는 아니다. 이낙연 전남도지사도 주장했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 어디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속으로 167㎞를 가는 기술적 문제, 총 16조8천억원이 들어가는 예산상 문제가 모두 걸렸다. ‘안 될 철도 공약’의 전형이다. ▶박남춘(인천 남동구갑)ㆍ윤관석(인천 남동구을) 의원도 철도 구상을 밝혔다. 인천대공원, 논현지구,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도시철도다. 총 사업비 1조4천억원이다. 사업비는 어찌해볼 수도 있다 치자. 문제는 역(驛)이다. 총 연장 17㎞에 11개 역을 설치한다고 했다. 도시철도라더라도 서는 곳이 너무 많다. 달릴 만하면 멈추는 기차가 될 판이다. 구간에 있는 표(票)를 모두 챙기려다 보니 이런 노선(路線)이 그려졌을 게다. ‘정치로 망가지는 철도노선’의 전형이다. ▶수원 총선도 철도 앞으로 질주하고 있다. 장안구(수원갑)는 신수원선 자랑 선거가 될 듯하다. 권선구(수원을)는 신분당선 연장, 팔달구(수원병)는 전철환승이 등장할 듯하다. 영통구(수원정)는 분당선 급행화가 꿈틀댄다. 남의 실적에 숟가락 얹으려는 후보도 있다. 4년 전 약속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또 만지작거리는 후보도 있다. 그래도 철도는 수원 지역 전 지역구에서 거의 대부분의 후보가 준비하고 있는 공약이다. ▶그도 그럴게, 철도만큼 매력 있는 공약도 드물다. 그 극단의 예가 지난 4년간 수원에서 목격됐다. 2012년 분당선 연장구간이 개통됐다. 영통구 일대 집값이 올랐다. 2015년 신수원선 신설 계획이 확정됐다. 장안구 주변이 활기를 띠었다. 2016년 신분당선 연장구간이 개통됐다. 광교신도시를 강남권으로 만들었다. 그때마다 주민이 좋아했다. 사정이 이런데 입 닫고 있을 정치가 아니다. 지역마다 플래카드가 넘쳐났다. ‘내가 해냈습니다’ ‘내가 시작했습니다’ ‘내가 거들었습니다’…. ▶감별사(鑑別師)는 유권자다. 유권자가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철도 공약의 내용을 따지고 분석해야 한다. ‘불가능한 철도 공약’ ‘노선 망칠 철도 공약’ ‘거짓말 철도 실적’을 가려내야 한다. 다소 불편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정부 지자체 예산 항목을 뒤져 보고, 정부의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을 들춰보고, 후보의 과거 행적을 찾아보면 눈치 챌 수 있다. 유권자ㆍ언론ㆍ시민단체가 함께 하는 ‘철도 공약 바로 보기 위원회’ 정도는 어떨까.
김종구 논설실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