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조수미가 28일(현지시간) 미국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특별공연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아쉽게 무산됐다. 조수미는 이날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영화 ‘유스(Youth)’의 삽입곡 ‘심플송’을 부른 아티스트 자격으로 참석, ‘태극기 드레스’를 입고 노래할 예정이었으나 성사되지 못 했다.
조수미가 입을 ‘태극기 드레스’는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와 원단업체가 힘을 합쳐 만든 것이었다. 태극기 드레스의 콘셉트는 가장 서구적인 의상을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디자인한 것이다.
평소 조수미 의상을 담당하는 ‘데니쉐르’ 서승연 디자이너는 수만 개의 핑크 시퀸 장식의 화려함 위에 선명한 블랙 레이스를 얹어 조수미의 보디라인을 극대화하는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또 구김이 덜한 ‘논개 실크’를 사용해 편안한 착용감과 부드러운 실루엣을 구현했다.
아쉬움이 크지만 조수미는 이미 태극기 드레스를 선보인 바 있다. 그는 2013년 2월 25일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태극기 드레스를 입고 나와 바리톤 최현수와 함께 애국가를 열창했다. 몸 전체는 순수ㆍ평화 등을 상징하는 흰색 바탕을 기본으로 태극기의 건곤감리 4괘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줄이 가슴 쪽으로 세 줄이 들어가 있었고, 팔에는 음양의 상징인 붉은색과 푸른색이 거대한 코르사주처럼 꽃 모양으로 만들어져 왼쪽 팔을 감쌌다.
엄숙과 권위의 상징이었던 태극기가 패션으로 다시 태어난 건 2002년 월드컵 때다. 3ㆍ1 운동 이래 가장 많은 태극기와 가장 큰 태극기가 거리와 경기장에 등장했다. 당시 태극기 패션이 대유행했다. 태극기를 망토로 걸치거나 머리에 수건처럼 두르거나 스카프로 맨 모습들이 흔했다.
여성들의 탱크탑이나 스커트로도 활용됐다. 보디 페인팅으로 얼굴이며 가슴, 배, 팔뚝에다 태극기를 그려넣기도 했다. 국기가 그렇게 멋진 패션 소재나 소품이 될 수 있는지 그때야 알았다.
이런 일은 1882년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땅에서 태극기를 내건 이래 태극기 역사상 처음이었다. 태극기가 애국가 속에 펄럭이는 엄숙한 이미지를 벗어나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대상으로 대변신한 것이다. 그땐 남녀노소, 지역, 계층 가리지 않고 모두 태극기를 사랑했다.
오늘은 3ㆍ1절이다.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그리 많지 않다. 태극기를 그토록 사랑했던 국민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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