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지역구의 법적 명칭은 갑구ㆍ을구ㆍ병구ㆍ정구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다르게 불렀다. 갑구는 장안구로, 을구는 권선구로, 병구는 팔달구로, 정구는 영통구로 불렀다. 짧게는 십수년, 길게는 수십년간 불려온 이름이다. 유권자가 그렇게 부르니 정치인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 장안구를 위해 뛰겠습니다’라고 했다. ‘우리 갑구를 위해 뛰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2012년 을구(권선구)의 서둔동이 병구(팔달구)로 바뀌었다. ‘권선구’가 입에 밴 주민들에겐 충격적 사건이었다. ▶그랬던 지역구 혼란이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어졌다. 왕창 섞였다. 장안구 율천동이 권선구로 갔다. 세류ㆍ권선ㆍ곡선동은 권선구에서 떨어져 나갔다. 4년 전 팔달 지역구로 갔던 서둔동은 다시 권선구로 옮겼다. 수원시 인구는 120만이다. 전국 지자체에서 제일 크다. 처음으로 무(戊)선거구가 생겼다. 행정 조직 4개구와 불일치다. 수원시에서 유독 극심한 혼란이다. 어찌 보면 시세(市勢)가 커서 겪는 일이다. ▶이 혼란 속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 많은 시민이 지역구 판단의 핵심을 ‘부’(富)에서 찾는다. 지역구와 지역 발전을 연계해 생각한다. 지역구가 좋으면 상권도 커지고 집값도 오른다고 생각한다. 우월하다고 판단한 지역구는 ‘문’을 닫아건다. 자부심의 단계에서 배타심의 단계로 넘어간다. 열등하다고 판단해도 문을 닫는다. 여기엔 열등감에서 오는 폐쇄의식이 있다. ▶이번 혼란에도 그런 흐름이 깔려 있다. A 지역은 B 지역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있다. 자신들이 부자 동네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B 지역의 일부가 A 지역으로 구획됐다. A지역은 “이참에 자기들만의 행정구로 독립하자”며 몰아간다. B지역은 벌집을 쑤신듯하다. “우리만의 지역을 공중 분해시켰다”며 반발한다. B지역에도 새롭게 C지역이 포함됐다. 여기서도 B지역은 불만이다. “못 사는 C동네와 합치기 싫다”는 여론이 깔려 있다. 결과적으로 A, B, C지역 모두가 불만이다. 지역마다 매겨진 사회통념적 ‘동네 값’이 달라서 이렇다. ▶‘강남’ ‘분당’ ‘판교’. 우리 사회에 ‘동네 값’을 매기기 시작한 ‘고유 명사’다. 이 고유명사가 전 국토를 바둑판처럼 쪼갰다. 그리고 옆 동네와 합치려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었다. ‘못 사는 동네와 같이 놀기 싫다’ ‘잘 사는 동네 들러리 싫다’고 말하게 만들었다. 드러내 놓고 말하긴 불편하다. 하지만, 많은 이가 기준 삼고 있는 현실 속 셈법이다. 정치인도 시민들도 선거구 획정이 잘못됐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그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다. 정치인에겐 표(票)가 기준이고, 지역민에겐 부(富)가 기준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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