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기자로 어느덧 1년. 끝나지 않을 듯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갈 때면 반겨주는 녀석(?)들이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유독 꼬리를 흔들며 달려든다. “힘내라”는 뜻인지 기분이 풀어질 때까지 애교를 핀다. 요크셔테리어(멍이)와 시추(츄). 벌써 14년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두 반려견은 기자의 가족이다.
어렸을 때부터 진돗개, 도베르만, 삽살개, 치와와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견종은 대부분 키워봤다. 물론 믹스견도 포함이다. 자연스럽게 반려견을 좋아하게 됐고, 동물 관련 문제에 관심도 많다.
그런데 최근 유기견 이야기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주 불편하다. 반려견을 “키우기 어렵다”는 이유로 길가에 버려 한 순간에 유기견으로 전락시키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던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수만마리의 유기견이 버려져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려견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기자는 유기견의 현실을 직접 피부로 체감하고자 버려진 유기견들을 훈련시켜 반려견 및 도우미견으로 변신시켜 분양하는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를 방문했다.
수십여마리의 개를 관리하고 있는 신견사를 물걸레로 닦고 있다.
■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 ‘첫 발’
지난 8일 오전 9시10분께 화성시 마도면 쌍송리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 주변. 나눔센터 방문을 위해 여운창 팀장과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10분이나 늦었다.
여 팀장은 전날 전화 통화에서 “매일 오전 견사청소가 있으니 9시까지 오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화성시 출근길은 초행(?)인 탓에 약속시간에 늦고 말았다.
센터는 마도산업단지 인근 벌판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어 3천600㎡ 규모가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저 썰렁한 분위기만 그윽했다. 나눔센터 앞에는 팔짱을 낀 채 밤색 정장을 차려 입은 여 팀장이 서 있었다. 부랴부랴 차에서 내리자 여 팀장은 “벌써 청소하고 있어요. 아 늦었는데…”라고 입을 뗐다.
기자는 머쓱한 마음에 소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여 팀장에게 “오늘 나눔센터의 일꾼으로 왔습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말을 들은 여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봉덕 훈련사를 불러 사료 포대 옮기는 일을 지시했다.
몇달에 한번 사료를 사들이는데 마침 그날이란다. 곧바로 위생복을 지급받고 사료 포대를 옮기는 일에 투입됐다. 사료 한 포대당 10㎏, 그다지 무겁지 않았지만 50개가 넘는 양을 옮기다보니 한 포대씩 옮길 때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렸던 몸에서 열이 났다. 이렇게 나눔센터 첫 일을 시작했다.
▲ 유기견 ‘찐빵이’에게 복종훈련을 시키고 있는 모습.
■ 처음 만난 유기견은 흰 털 복슬복슬~ ‘찐빵이’
사료가 담긴 포대를 옮기는 일을 30여분 넘게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눔센터는 개 짖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장 훈련사는 “개들이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다”며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개 한 마리를 소개시켜주겠다”며 센터 내 훈련실로 안내했다. 훈련실은 꽤 넓은 공간으로 개들을 위한 시설이 구비돼 있었다.
넋놓고 훈련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사이 장 훈련사가 한 마리의 개를 안고 들어왔다. 새하얀 털을 두른 몰티즈였다. 그는 “찐빵이 입니다. 두 살이고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됐어요. 오신 김에 복종 훈련을 알려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이어 장 훈련사는 찐빵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훈
련 과정을 설명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첫째, 복종 훈련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충분히 줄 것. 주변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는 행동을 지속시켜주면 자연스럽게 안정을 찾게 된다.
둘째, 허리를 약간 숙여 눈을 마주치면서 지시한다. 마지막으로 수신호와 함께 가르치면서 보상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장 훈련사는 “훈련을 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정해진 식사는 한 번으로 제한했어요. 훈련을 잘 따라오면 간식과 사료를 더 주죠. 이게 복종훈련의 포인트 입니다”라고 말했다.
▲ 유기견 ‘찐빵이’에게 복종훈련을 시키고 있는 모습.
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찐빵이를 불렀다. 이어 눈이 마주치자 기자는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장 훈련사가 알려준 수신호로 명령했다. 오른손 두번째 손가락과 중지 손가락을 모아 내리며 “앉아”, “엎드려”. 하지만 찐빵이는 달아나기 일쑤였다.
이 모습을 본 장 훈련사는 정확하고 큰 소리로 전달할 것을 주문했다. 톤을 조금 높여 또다시 “앉아”, “엎드려”를 지시했다. 큰 소리에 어리둥절한 찐빵이가 계속된 고함(?)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이내 명령에 따랐다. 이어 장 훈련사 설명대로 보상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찐빵이와 진땀나는 복종 훈련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 “왈왈~ 나 좀 봐주세요” 얼굴 빼꼼
찐빵이와 아쉬운 만남을 뒤로 하고 다른 유기견들이 수용돼 있는 신견사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견사동은 신축된지 얼마되지 않아 깔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오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십마리의 유기견들이 우리 안에서 얼굴만 빼꼼이 내민채 울부 짖고 있었다. 평소 TV로만 보던 모습을 실제로 보니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어느 한 가족의 일원이었던 개들이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흘러들어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버려진 개들의 슬픔 때문인지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한 마리, 한 마리 눈에 담을 새도 없이 장 훈련사는 쓰레받기를 주며 변을 걷어내는 일을 시켰다. 일단 주어진 일이 먼저였다. 배변 칸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변을 걷어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10년 넘게 개를 키우면서 이미 변 치우는데는 도사였기 때문이다. 일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일이 끝나고 자세히 견사를 둘러 보았다. 견사는 생각보다 좁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고시원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할 것 같다.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3년 동안 이곳에 머무는 한 개는 예전에 장애인 도우미견으로 활약했었다.
▲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에서 일일체험을 하고 있는 기자가 사료포대를 창고로 옮기고 있다.
하지만 주인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또다시 보호소로 돌아오게 됐다. 반면, 곧 나갈 준비를 하는 푸들도 있었다. 오른쪽 귀에 털이 빠지긴 했지만, 새로운 주인에게 단단히 눈 도장이 찍혀 문제없이 입양될 예정이다.
기자는 신견사 안 유기견들을 눈에 담으려 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거뜬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장 훈련사는 “훈련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라, 일회성 교감에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보통 보호소와 달리 훈련 과정이 있어 행동 또한 조심해야 했다.
장 훈련사는 “보호소에서 선별돼서 온 아이들이에요. 나이가 어리고 똑똑한 아이들이죠. 상위 3%라고 보면 됩니다”라면서 “훈련도 좋지만 빨리 새로운 주인을 찾아 행복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이어 “3년 동안 270여 마리가 새로운 주인의 품을 찾았다”고 덧붙였다.
모든 일을 마치고 여 팀장은 다시 만났다. 여 팀장이 “오늘 하루 어땠나요?”라고 물었지만 질문에 바로 답하진 못했다. 그저 “‘인간’이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여 팀장 역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수원으로 돌아가는 길, 길거리에서 주인과 함께 걷고 있는 한 마리 개가 눈에 들어왔다. “너는 꼭 사랑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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