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시장이 꽁꽁 얼면서 남들과 다른 스펙으로 무장하는 취업준비생들이 늘고 있다. 학벌, 학점, 토익, 자격증, 수상경력, 어학연수, 봉사활동, 인턴경력 등 이른바 ‘8대 스펙’은 필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구직자들의 스펙이 상향 평준화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업포털 ‘사람인’이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신입 이력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학점을 제외한 자격증과 인턴 경험, 영어 성적 등 평균 스펙이 2년 전보다 상승했다. 이젠 웬만한 스펙으로는 취업문을 못 뚫다 보니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한 줄 보태려 막노동부터 안나푸르나 등반 등 극한 체험까지 취준생들의 스펙 전쟁이 눈물겹다.
높은 노동 강도 때문에 극한 알바로 꼽히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나 공사장 막노동을 일부러 하는 취준생들이 있다. 어차피 해야 할 아르바이트라면 이력서나 면접에서 언급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쌓겠다는 의도에서다. 힘든 일도 버틸 수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서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등반, 수영복 입고 남극바다 뛰어들기, 사하라 사막 걷기, 철인 3종경기 도전 등 고산과 극지, 사막에서의 극한 경험으로 이력서를 채우려는 이들도 있다. 도보나 자전거로 국토 대장정을 하는 경험은 누구나 하는 흔한 것이 돼서 ‘고난ㆍ극한 스펙 쌓기’ 도전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도전정신과 패기를 보여주기 위해 보다 강도 센 경험을 선택했다.
그런가 하면 상반기 기업 공채 시즌을 앞두고 특이한 인생 스토리를 만든다며 각종 스펙을 급조하는 사례도 있다. 평소 그 일에 관심이 별로 없지만 자기소개서 스토리를 위해 ‘인스턴트 스펙’을 만드는 것이다. 스펙 내용을 뻥튀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제 어떤 취준생은 전국을 돌며 ‘평화의 소녀상’ 얼굴 닦아주기를 했는가 하면, 취직을 위해 종교를 바꾸는 경우까지 있다. 영업직 취업을 희망하는 또 다른 취준생은 ‘웃음지도사 1급’ 자격증을 땄다. 16만원을 내고 3일간 인터넷 강의를 들은 뒤 홈페이지에서 문제를 풀면 딸 수 있는 자격증이다.
채용 담당자들은 회사의 업종ㆍ직무와 연관있는 경험이 중요하지 불필요한 스펙을 나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인스턴트 스펙은 별로 신뢰하지도 않는다. 정부도 학력 등 스펙 타파를 외친다. 하지만 구직자들의 스펙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취업난이 나은 한국사회의 진풍경, 스펙 전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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