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법리는 시민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성추행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였다. 2014년 12월 24일만 해도 시민은 서 시장을 믿었다. 경찰에 나온 그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라는 안도가 많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후로 입을 닫았다. 성추행은 사실로 굳어갔다. 법치(法治)의 보루인 재판부도 성추행을 사실이라고 결론 냈다. 현직 시장의 여성 성추행, 시장실에서의 범행, 입막음용 수천만원 전달….
이런 참담한 죄명을 쓰고 현직 시장이 구속됐다. 10개월간 수의(囚衣)를 입고 지냈다. 성폭력 치료를 받으라는 명령도 받았다. 성범죄 우범자 명단에도 올랐다. 성범죄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까 보는 명단이다. 이런 판결이 나오자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 법원 판결이 맞고, 성추행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당연히 반성의 길을 얘기할 거라고 봤다. 그런데 뒤에 붙은 말이 묘했다.
“판결에 대해서는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아, 보다 더 심도 있는 공정한 법의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대법원에 호소하겠다.”
뭐가 억울하다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판단 받겠다는 게 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면서 그가 간 곳이 시장실이다. 17만 시민을 대표하는-판결문에 성추행 범죄 장소로 명시돼 있는- 그 시장실로 갔다. 그리고 계속 근무한다. 억대 연봉도 계속 받는다. 판공비도 계속 쓴다. 인사권도 계속 휘두른다. 포천시 행정도 계속 지휘한다. 그 행정 속엔 성범죄자로부터 포천의 부녀자들을 지켜야 할 안전 행정도 포함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더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번엔 형제들의 땅 투기 논란이다. 2014년 포천시가 관내 땅을 용도 변경했다. 이 땅이 아파트 부지로 바뀌었다. 맹지에서 금싸라기로 변한 셈이다. 부동산 업자들은 이 땅의 시세차익을 서너 배로 본다. 이 땅 일부에서 서 시장 형제들의 이름이 나왔다. 근처 땅을 2012년 말에 사 둔 모양이다. 한 마디로 대박이다. 동물적 감각이라도 있는 형제들인가. 아니면 앞날을 보는 예지력이라도 있는 건가.
경찰은 ‘정보 유출에 의한 투기’에 방점을 찍었다. 이쯤 되면 나와야 할 시장의 입장이 있다. “형제들은 땅을 사지 않았다. 정보를 유출한 사실도 없다. 경찰의 표적 수사다.” 그런데 이번에도 말이 없다. 성추행 때처럼 입을 닫았다. 형제가 땅을 산 게 맞는 것 같다. 이제 포천시민은 또 한 번의 못 볼 꼴을 봐야 할 처지다. 주변 사람들이 불려 가고, 애먼 공무원들이 끌려가고, 시청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엊그제였나. 서 시장이 학생들 앞에 섰다. 장학금 수여식이었다. 초ㆍ중ㆍ고생 131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다. 초ㆍ중ㆍ고 8개교 교사들에게도 장려금을 줬다. 열심히 가르친 교사들이다. 그들 앞에서 이렇게 훈시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비롯해 장학금을 후원해주신 지역 여러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혼신을 다해 학업에 정진해 주길 바랍니다.”
포천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 애들인데. 그 애들에게 ‘성추행 피고인 서장원’의 훈시가 과연 필요했을까.
세상에 뇌물 먹고 감옥 가는 시장은 많다. 하지만, 성추행하고 감옥 간 시장은 없다. 세상에 가족범죄로 조사받는 시장은 많다. 하지만, 성범죄까지 겹친 시장은 없다. 그는 세상을 향해 “나만 그랬느냐”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향해 “당신이 처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서 시장에겐 하루라도 버티고 싶은 시장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민에겐 단 하루도 보고 싶지 않은 시장실이다.
2년 전 그는 55.82%의 지지를 받았다. 2년 뒤 그 55.82%가 참담하게 배신당했다. 이 배신의 대가는 대법원이 아니라 서장원 시장이 갚아야 할 몫이다. 사퇴(辭退)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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