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섣부른 훈수, 홀대받는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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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옆에서 구경하던 제삼자가 수를 가르쳐주는 것을 ‘훈수를 둔다’라고 한다. 훈수 여덟이라는 말도 있는데 ‘옆에서 보는 사람이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여덟 수 앞을 내다본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하는 당사자가 일에만 집중하다보면 객관적으로 형세를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무명자(無名) 윤기(尹) (1741~1826)는 이와 관련하여 실제로 일을 담당하는 자가 그 일을 해결하려는 마음이 가장 절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황을 더 명확히 볼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

 

고전번역가 권경열은 훈수의 부정적 측면을 다음의 예로 설명한다. 임진왜란이 끝날 즈음 조정에서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에 대한 교체 여론이 일자 선조(宣祖)가 말하길 “곁에서 보는 것과 직접 담당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아무개가 가면 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작 그 사람이 가도 역시 전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속담에, ‘고양이를 쥐로 바꾼다’고 한 것이 또한 이런 이유이다”

 

최근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은 ‘경기도 공공기관 경영합리화 방안’ 용역결과로 발칵 뒤집혔다. 도내 25개 공공기관을 통폐합, 기초지자체나 민간이전 또는 폐지를 통해 13개로 줄이는 내용이다. 그러나 해당 당사자들은 이러한 훈수에 대해 용역업체의 ‘아니면 말고’ 식 무책임한 결론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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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과학기술 관련 기관들을 통폐합 시키는 등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번 컨설팅 결과에 수많은 도내 과학기술인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출범과 함께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강의 기억’을 이루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지난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4.29%로 세계 1위이다. 전국 기업부설연구소의 약 32%를 보유한 경기도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중심지이다.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 100년이 과학기술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연희 경기도과학기술진흥원 정책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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