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 자루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도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컴컴한 창고 한 쪽에 널브러져 있기도 하고

상자 속에 묻혀 있었다

 

채워지는 대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무엇이든지 그대로 품어

시장 한가운데 당당히 서서 오가는 발길을 붙잡는다

 

산비탈 고추밭에 한여름을 묻은 순이 할매 땀내와

밧줄로 절벽을 오르며

약초 캐는 덕이 아재의 고단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늦은 밤 뜨거운 저마다 삶을 담고

달리는 트럭에서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온몸이 젖어도

뿌리 내린 곳을 떠나는 것들을 감싸며 입을 꼭 다문다

조영실

충남 당진 출생. <한국시학>으로 등단. 수원문인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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