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는 이런 것도 기삿거리였다. ‘전화 주문 가맹점 서비스 시작됐다.’ 수신자 부담을 상징하는 ‘080’ 서비스를 다룬 기사다. 자장면 8585(바로바로), 치킨 9292(구이구이), 꽃배달 3535(사모사모), 생수배달 3434(생수생수), 자동차 대여점 1472(일사천리) 등의 익살스런 고유 번호도 소개됐다. 당시 윈티앤티(주)가 시작한 이 서비스는 서울 강남 등 5개구에서 먼저 시작됐다. 주문도 무료일뿐더러 음식값도 할인받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그로부터 15년여 지나고 ‘앱 배달’ 시대가 열렸다. 전국의 모든 가맹점을 동시에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전화번호를 기억해 둘 필요도, 맛있는 집을 찾아 고민할 필요도, 전화 요금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업계 매출만 566억원(2014년 기준)에 달한다. 여기에 51.4%를 차지하는 절대 강자가 ‘배달의민족’이다. 전국에서 15만여개 음식점이 가입해 있다. 새로운 개념의 사업으로 각광받는다. ‘2016 에피어워드’에서는 올해의 브랜드, 올해의 마케터 등 9개 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주문 업계의 빅 브러더다. 이 빅 브러더, ‘배달의민족’이 고장 났다. 지난 20일 오후 6시를 전후해 앱이 불통됐다. 배달 수요가 가장 많은 저녁 식사 시간대였다. 수많은 치킨집과 중국음식점 등의 주문이 일시에 중단됐다. 닭 몇 마리, 자장면 몇 그릇에 울고 웃는 영세 음식점들엔 치명타다. 먹통이 된 ‘배달의민족’ 앱 앞에 식당들이 속수무책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알려진 이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산장애’였다. ▶고약한 것은 빅 브러더의 횡포다. 가맹점들의 피해는 분명히 발생했다. 그런데 ‘배달의민족’은 보상할 수 없다고 했다. 손해배상을 할 규정이 없다고 했다. 설혹 피해가 있었어도 1시간 이내에 복구됐으니 보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조사했더니 오류가 56분 만에 해결됐다고도 설명했다. 가맹 음식점 업주들은 ‘배달의민족’에 매달 6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한다. 그런데도 발생한 피해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짜장면 시키신 분~.” 핸드폰 시대에 등장한 CF였다. 그때의 음식 주문은 고객과 식당이 직접 했다. 그 고객과 식당 사이에 “앱”이라는 거대한 빅 브러더가 끼어들었다. 15만개 식당과 그 몇십 배쯤 되는 사람들을 장악했다. 그런데 그 빅 브러더가 사람을 배반했다. 기계의 잘못도, 시스템의 잘못도 아니다. 빅 브러더를 운영하는 업체의 비양심이다. 시장 장악력을 믿고 부리는 전형적인 횡포다. 제재와 처벌이 필요하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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