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진짜 선물

류설아 문화부 차장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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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 지났다. 자녀, 조카, 손주 등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선물하셨는지. 31개월 된 네살배기 딸도 많은 장난감을 선물받았다. 그 중 어릴 적 ‘씽씽이’라고 불렀던 킥보드도 있었다. 상자 개봉과 동시에 공원에서 짧은 다리로 열심히 밀며 한참 놀면서 흠뻑 땀에 젖었다. 

다행히 이날 미세먼지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한국환경공단이 관측한 미세먼지는 전국적으로 ‘보통’ 이었다. 장맛비같았던 비에 쓸려간 덕인지, 모처럼 연일 희뿌옇던 하늘이 제 색을 냈다. 태풍같았던 바람까지 잔잔해 내리쬐는 태양에 한여름 날씨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챙겨갔던 딸의 작은 마스크를 만지작거렸다. 문득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려 봤다. 마스크를 쓰고 놀았던 적이 있었나. 아니, 전혀 없다. 하지만 요즘 엄마들은 일기예보에서 비가 올 확률보다 미세먼지와 황사 농도를 먼저 챙긴다. 아이들의 외출 시 필수 용품 중 하나가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마스크다.

 

영화 <인터스텔라> 속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환경 오염으로 지구상에 모래 폭풍이 불어 식량 재배도 힘든 미래, 그 어느 날. 집 안 모든 창문을 닫아 놓았어도 모래먼지가 수북한 부엌 식탁에서 뒤집어 놓은 접시를 닦고 밥을 먹는 부분이다. 등장인물들은 외출할 때 모래폭풍을 막기 위해 마스크와 안경을 착용한다.

 

수 많은 공상과학영화나 소설 속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다. 이세돌이 인공지능과 바둑을 두는 등 이제 많은 영역에서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고 있다. 인터스텔라 속 그 끔찍한 장면이 상상이 아니라, 소중한 아이들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동네 뒷동산에서 실컷 맡았던 그 싱그런 공기, 눈부시게 푸르렀던 그 하늘, 코와 목에 걸리는 것 없이 청량했던 그 바람. 어린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늦지 않았다. 샤워할 때 물 틀어놓고 쓰지 않기, 음식 남기지 않기, 자동차 공회전 하지 않기 등 소소한 생활 습관이 어린 시절 누렸던 환경을 되찾아올 수 있다. 내가 잠깐 감수하는 불편함과 번거로움, 그것이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진짜 선물이다.

류설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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