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임을 위한 행진곡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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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에 피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씨와 1979년 숨진 노동운동가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 당시 노래극에 삽입됐던 곡이다. 백기완의 장시 ‘묏비나리’의 한 부분을 차용해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짓고, 작곡가 김종률이 곡을 만들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등의 가사는 온 몸을 바쳤던 치열한 투쟁과 죽음으로 귀결된 패배의 절망을 고스란히 담아냈고,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비극적 죽음과 절망을 딛고 나아가는 비장함과 결연함을 잘 표현했다.

1980년대 각종 사회운동 현장에서 불리고 또 불렸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운동가들에게는 영혼의 노래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 노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노래이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민중가요가 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대중 정부가 5·18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1997년부터 정부 행사에서 ‘제창’됐지만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부터 공연단 ‘합창’으로 대체됐다. 보수ㆍ진보의 이념 대립 속에 2013년부터는 기념행사마저 정부 주도 행사와 유가족ㆍ시민단체 기념식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국회가 2013년 공식 추모곡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을 냈지만 국가보훈처는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야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을 강력 요구했고, 박 대통령은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도록 국가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합창’ 방식이 다시 ‘제창’으로 바뀔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보훈처는 16일 기존 ‘합창’ 방식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제창’이 국론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제창에 찬성 여론 못지않게 반대 의견도 적지않기 때문”이라며 “합창단이 부르면 따라 부를지 여부는 참석자 자율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논란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여야는 모두 반발하며 재고를 요청했다.

 

내일이면 3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1980년 5월 민주주의를 외치며 총칼에 맞서다 피 흘린 시민들의 넋과 뜻을 기리는 날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기념곡으로 지정되진 못했지만 이 날도 많은 국민들은 이 노래를 힘차게 부를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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