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많이 마셔 병을 얻게 된 알코올 중독자 26명이 2014년 8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와 주류회사가 술 판매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하지 않아 병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류업체가 대대적인 광고를 하면서도 술병에는 보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글씨로 경고문구만 써놨다”면서 “알코올 중독으로 직장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인당 3천만원에서 최고 2억5천만원까지 모두 21억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이유없는 신청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알코올 피해자로서 주류 판매 금지까지 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영향도 있었을까? 술병의 과음 경고문구가 바뀐다. 1995년 이후 21년만으로 임신 중 음주와 청소년 음주, 음주로 인한 질병 위험 문구가 추가된다. 이는 술병에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문구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이 국회를 통과해 9월 3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술병에 ‘음주가 건강에 해롭다’는 내용만 의무 표시 대상으로 규정돼 있다. 현행 경고문구는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특히 청소년의 정신과 몸을 해칩니다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특히 임신 중의 음주는 기형아 출생률을 높입니다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운전이나 작업중 사고 발생률을 높입니다 등 3가지다. 주류회사는 이중 하나를 골라 술병 라벨에 표시해야 한다.
복지부는 임신 중 음주 외에 ‘간경화나 간암’이라고만 돼있는 질병명에 다른 질병을 추가하고 청소년 음주 폐해 관련 내용도 더 경각심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술병 외에 다양한 광고 매체에도 과음 경고문구를 표시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의 술사랑은 지극하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148.7병, 소주는 62.5병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술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알코올이 인체 유전자를 파괴하거나 발암물질이 쉽게 침투할 수 있게 해 간암, 대장암, 식도암, 직장암 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에 적정 음주량을 권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 3명 중 2명은 WHO가 제시하는 음주 권장량(남자 40g, 여자 20g 이하)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 새롭게 바뀌는 과음 경고문구가 음주량을 줄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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