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도 더 된 얘기다. A는 구속 중이었다. 방송 언론에 나올 정도로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지병이 있었던 A가 보석을 신청했다. 판사 출신의 변호인이 일을 맡았다. 담당 판사가 검찰 측 보석 의견을 물었다. 변호인은 “검찰 쪽에서 의견이 좋게 나오면 가능할 것”이라며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변호인이 말한 검찰 쪽 좋은 의견은 ‘기각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됨’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전달된 검찰 의견은 A4 용지 두 장이 넘었다. 구구절절 풀어주면 안 될 사유를 설명했다. ▶보석 신청은 결국 기각됐다. ‘기각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됨’의 뜻이 그렇게 컸다. 문구상 뜻은 ‘기각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다. 보석 또는 구속적부심에서 피고인을 풀어주지 말라는 단어다. 그런데 법조계-적어도 그즈음 법조계-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피고인의 죄질, 상습성에 품성까지 파헤친 장문의 의견서가 진정한 ‘기각 의견’이다. ‘기각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됨’의 13자는 ‘풀어주어도 괜찮다’는 의사 표시로 통하고 있었다. ▶‘적의 처리’라는 말도 있다. 적의(適宜)란 ‘맞고(適) 마땅한(宜) 처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법조 언어로 사용되면 느낌이 달라진다. 검찰이 적으면 ‘법원이 풀어주어도 무방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십수년전의 ‘기각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됨’과 그 쓰임이 닮았다. 결국, 보석으로 석방되고자 하는 피고인이 검찰에 가장 원하는 의견-바꾸어 말하면 검찰이 피고인 측에 가장 크게 인심을 쓰는 의견-이 바로 ‘적의 처리’ 또는 ‘기각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됨’이다.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의 중심에도 이 ‘적의 처리’가 있다. 정 대표가 법원에 보석허가 신청을 했고, 이에 대한 검찰의 의견이 ‘적의 처리함이 상당하다’였다. 1, 2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다. 그를 석방해도 무방하다는 느낌의 의견을 낸 것이다. 검찰은 해명했다. 관련 수사에 도움을 받은 점, 도박 재활 프로그램에 2억원을 제공하겠다고 한 점 등을 감안했다고 했다. 하지만, 검사장 출신 변호사의 입김이 만들어낸 ‘문구’라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대목이다. 수임료 50억, 100억 얘기는 있는 자들의 얘기다. 국민의 진짜 관심은 그 돈이 법의 잣대를 흔들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적의 처리함이 상당하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봐주기 의견’의 상징처럼 된 이 문구가 하필 정운호 기록에 남아 있다. 50억, 100억씩 변호사 선임료를 뿌려댄 피고인 기록에 남아 있다. 돈이 법을 흔들었다는 증거 아닌가. 그렇게 해석하는 게 더 상식적이지 않나. 정운호 기록에 ‘적의 처리’는 수십억원짜리 문구 일수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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