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황당한 학교 성교육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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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친구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여행 갔을 때: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지 않는다’ ‘채팅 중 직접 보고 싶다며 만남을 제안할 때: 낯선 사람과 채팅은 가급적 삼간다’ ‘지하철에서 성범죄를 당했을 때: 가방끈을 길게 뒤로 멘다. 실수인 척 (가해자) 발등을 밟는다’

교육부가 내놓은 성폭력 대처법이다. 어이없고 황당하다. 지하철 같은 밀집된 공간에서 성추행을 당하면 곧바로 신고하거나 소리치는 게 아니고 가방을 뒤로 메거나 발을 밟으라니 교사들도 어떻게 교육할지 난감해한다.

교육부가 체계적인 성교육을 하겠다며 지난해 3월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내놓았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사들이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따라 성교육을 지도하는 가이드라인이다. 6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데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는커녕 현실과 맞지 않거나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이 많아 비판이 거셌다.

일례로 초등학교 3~4학년 지도서 초안에선 아빠의 역할을 못 박기, 전구 갈기, 가구 옮기기 등으로, 엄마의 역할은 음식 만들기, 옷장 정리하기, 빨래 개기 등으로 구분했다. 고등학교 지도서에선 ‘인간의 건강은 선천적으로 자궁에서 결정된다’ ‘임신 전부터 자궁 관리가 중요하다’라며 출산을 여성의 책임으로만 규정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러한 내용들을 포함해 150여 곳을 수정해 개정된 성교육 표준안을 내놨지만 여전히 엉터리가 많다.

중학교용을 보면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는 표현이 있다. 술자리 농담에서나 오가는 말이다. ‘성 욕구를 성관계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은 성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는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도 나온다. 우리나라 초혼 연령이 남녀 모두 30세가 넘는다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내용이다. 자료는 전반적으로 남성은 성에 굶주린 듯한 느낌으로, 여성은 판단력이 미약한 듯하게 묘사했다. 또 비현실적인 금욕 강조와 함께 피임 위주의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성교육 표준안으론 제대로 된 성교육, 생명교육을 할 수 없다는 말한다. 성차별적이고 남녀의 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으로 청소년에게 오히려 그릇된 성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비판한다.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실효성 있는 성교육 가이드를 내놓던지 아니면 없애는 게 나을듯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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