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용인시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느닷없이 날아든 ‘재정 가압류 딱지’다. 조만간 1천억원을 빼앗아 간다는 통고서다. 발송처는 대한민국 정부다. 그러니 호소할 데도 없다. 경전철 빚 5천억 갚는 데 5년 걸렸다. 1년에 1천억씩 갚았다. 그런데 꼭 그만큼씩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고기동이 다시 걱정에 휩싸였다. 곳곳에서 제2, 제3의 고기동 걱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 허리띠 졸라맸던 5년이 허사가 됐다.
그 용인 옆으로 성남시가 있다. 24살 청년들에게 50만원의 청년 배당을 준다. 1만명쯤 받는데 요긴하게 잘 쓰는 모양이다. 다른 지역 24살 청년들의 부러움을 산다. 돌아보면 격세지감이다. 불과 6년 전 성남은 파산 상태였다. 호화 청사, 예산 낭비로 금고가 거덜났다. 당겨 쓴 판교 특별회계 5천200억원이 빚으로 남았다. 결국, 시장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그러던 시가 이제 빚도 갚고, 돈도 준다.
여기에도 ‘가압류 딱지’가 날아들었다. 매년 1천200억원씩 가져갈 테니 그리 알라는 일방적 통보다. 24살 청년 배당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확정된 무상교복 사업은 시작도 못 해보게 됐다. 산후 조리 복지에 걸었던 여성들의 기대도 날아갔다. 어렵사리 탈출한 모라토리엄이다. 그렇게 모아 만든 여분으로 시작해보려던 성남시만의 복지다. 이 모든 것들이 ‘1천200억짜리 압류 딱지’로 날아가게 생겼다.
꼭 10년 전, 우리는 유바리(夕張)시를 봤다. 펑펑 쓰다가 파산된 일본 지자체였다. 일본 정부가 강하게 틀어쥐었다. 공직사회부터 철퇴를 맞았다. 수가 줄었고, 월급도 줄었고, 재정권도 빼앗겼다. 우리 정부가 널리 알렸다. 방만한 지자체를 군기 잡는 본보기로 썼다. 호화청사를 트집 잡는 재료로 썼다. ‘우리도 파산 지자체가 나올 수 있다’며 겁도 줬다. 투융자 심사 강화로 지방을 옥죈 게 그 즈음부터다.
그리고 10년이다. 유바리시를 다시 보자. 초ㆍ중등학교가 11개에서 2개로 줄었다. 복지 회관이 문 닫았고, 인구도 반 토막 났다. ‘이제 풀어주자’는 요구도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단호하다. “느슨하게 풀어줄 수 없다”며 원칙을 강조한다. 이것이 일본의 정책이다. 지자체 빚만 200조엔에 달하는 일본이다. 하지만, 도쿄 예산 빼앗아 유바리시에 주는 발상 따윈 안 한다. 철저하게 책임질 곳에 책임 묻는다.
같은 10년, 우리 정부는 달랐다. 방만한 지자체에 대한 경고는 사라졌다. 대신 잘 사는-정확히는 그저 겨우 먹고사는-지자체의 곳간에 손을 대기로 했다. 경전철 빚 5천억원 갚느라 고생한 용인시 곳간에 손을 대기로 했다. 탈탈 털어 모라토리엄을 졸업한 성남시 곳간에 손을 대기로 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본 정부는 책임 있는 지자체에 메스를 대는데, 한국 정부는 책임 없는 지자체에 메스를 댄다.
사전에 적힌 자치(自治)의 의미는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림’이다. 한번이라도 국어사전을 봤더라면 나올 수 없었을 ‘지방재정제도 개편안’이다. 그래서 나쁘다. 지방 정부 곳간에 중앙 정부가 손을 대는 나쁜 정책이다. 뺏기는 지역과 빼앗는 지역이 어색하게 갈라서야 하는 아주 나쁜 정책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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