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라는 옛날 드라마가 있다. 고지를 놓고 적과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실탄이 모두 떨어지고 만다. “소대장님! 실탄이 떨어졌습니다.”라고 외치지만 더 이상 실탄은 보급되지 않는다. 결국, 전우들은 장렬히 전사한다.
지난달 31일 열린 공공뮤지엄의 위기와 미래전략 간담회에서 모 박물관장이 경기도 공공 뮤지엄들의 현실을 이렇게 비유하자 청중 사이에서 자조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경기도가 산하기관 경영합리화 방안 중 하나로 경기도 공공 박물관 일부를 민간 위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뮤지엄본부가 주최한 이날 간담회는 경기도 공립 뮤지엄의 효율적 경영을 모색하기 위해 열렸지만 경기도의 문화기관에 대한 무차별적인 통폐합과 민간위탁 방침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됐다.
문화기관 뮤지엄에 대한 이해 없이 효율성에만 맞춰진 왜곡되고 졸속으로 작성된 경영합리화 방안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기 공공박물관 예산은 지난 2008년 78억원에서 지난해 26억원으로 급감했는데 뮤지엄의 근간이 되는 소장품 구입예산은 최근 3~4년 동안 ‘0’원에 그치고 있다. 이미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른 수건을 짜서 근근히 버티고 있었는데 이제 성과를 못내니 민간에 넘기겠다? 뮤지엄 관계자들은 억울하고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도 경영합리화 방안에는 현행법상 민간 위탁 자체가 어려운 박물관 민간위탁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문화유적지(사적 제268호) 안에 위치한 전곡 선사박물관과 문화재보호구역(경기도 기념룰 제7호)에 위치한 실학박물관은 현행법상 민간이 시설을 운영할 수 없다. 백남준 아트센터는 소장품 저작권자와 계약상 백남준 아트 센터 사업권을 문화재단으로 한정해 민간 위탁이 힘들다. 이밖에 민간에서 운영할 경우 입장료 인상과 공공성 훼손 문제 등은 아예 검토되지 않았다.
경기도 공공 뮤지엄들은 한때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벤치마킹 할 정도로 대한민국 문화계를 선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오히려 다른 지역 문화계 인사들로 부터 위로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어쩌다 경기도 뮤지엄들이 이렇게 됐습니까”
경영합리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문화기관의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문화를 선도했던 경기도가 문화를 퇴보시킨 경기도로 남지 않길 바란다.
이선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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