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가 3일(현지시간) 미국의 병원에서 7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0세기 최고의 복서 알리는 은퇴 3년만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으며, 2014년 12월에는 폐렴으로, 지난해 1월에는 요로 감염으로 치료를 받는 등 최근 수년간 건강이 악화됐다.
복싱 영웅의 타계에 전 세계가 추모하고 있다. 알리의 죽음을 세계가 애도하는 건 그가 복싱 영웅이어서만은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지만 링 밖에선 인종차별과 싸운 진정한 복서였기 때문이다.
1942년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태어난 알리는 본명이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였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곳에서 태어난 알리는 가난과 무시 속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12세 때 아마추어 복서 생활을 시작했고,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흑인해방운동가 말콤X를 만나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꾸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버리면서 ‘노예의 손자’ 운명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말콤X와 교류하며 피부색을 떠나 흑백이 공존하는 미국을 꿈꿨다.
알리는 프로로 전향해 3차례에 걸쳐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고 통산 19차례 방어에 성공하면서 1960~1970년대를 풍미했다. 1967년에는 베트남전쟁 참전 통고에 양심적 병역 거부로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프로복서 자격마저 상실했다.
이후 3년의 공백을 딛고 1970년 링에 복귀했고 1974년 조지 포먼을 8회 KO로 물리치고 세계 챔피언에 복귀했다. 프로 통산 전적은 56승(37KO) 5패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1964년 2월 25일 WBAWBC통합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해 승리하기 전 인터뷰에서 한 말로, 그를 늘 따라다닌 수식어였다.
그는 화려했던 복서 생활은 물론 인종차별과 싸운 인권운동가로서도 많은 일화를 남겼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금의환향했을때 식당 출입을 금지당하자 메달을 강에 던져버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남자농구 결승전 하프타임 때 그에게 다시 금메달을 수여했다.
안타깝지만 알리는 떠났다. 하지만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알리의 삶을 “링 안에서는 챔피언, 링 밖에서는 영웅”이라고 말한 것처럼, 알리는 세계인의 가슴에 영원한 챔피언이자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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