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생리대 인권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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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생리대’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뜨겁게 달궜다. 곤궁한 처지의 여성 청소년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말 못할 고통을 당한다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드러났다.

 

발단은 지난달 23일 국내 1위 생리대 제조업체인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6월부터 8%가량 올릴 예정이라는 발표로 시작됐다. 트위터 등 SNS에는 비싼 생리대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들이 이어졌다. 

생리대 값이 없어서 한 달에 일주일씩은 학교를 빠지고 수건을 깔고 집에 누워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소녀는 돈 없는 부모에게 생리대를 사 달라고 할 수 없어 신발 깔창을 속옷 아래에 넣고 다녔다고 했다. 학교 화장실의 화장지를 말아 생리대 대용으로 쓰는가 하면, 생리대 하나로 하루를 버텼다는 내용도 있었다.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이 선뜻 털어놓기 어려웠을 ‘아픈’ 사연들이다.

 

이들은 여성으로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월경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런 이야기들을 SNS에 털어놓으며 수치심도 느꼈을 것이다. 많은 헌법학자들은 “수치심은 인간 존엄성을 저해하는 감정이며 시민이 수치심을 겪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사회의 의무”라고 주장한다.

 

생리대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들이 알려지자 많은 어른들이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밥을 굶는 아이들 이야기는 들었어도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아이들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생리대를 사기 어려운 형편의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15~19세)은 전국적으로 6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저소득층의 생리대 문제는 단순 복지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며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1인당 연 30만원 정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구김없이 자라야할 청소년들의 이런 아픔을 지금까지 몰랐다니 어른으로서 특히 정치행정가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이 시장의 몇몇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던 사람들조차 이번 발빠른 조치에 대해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생리대 문제가 커지자 유한킴벌리는 가격 인상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중저가 생리대도 출시하기로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언제까지 기업체의 선의에만 맡길 수는 없다. 이제라도 정부와 사회가 나서서 근본대책을 찾아야 한다. 반짝의 관심이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함이 옳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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