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흡사 동굴처럼 길다. 차양이 맞닿아 하늘을 가린다. 그 붉은 차양에 얼비친 골목도 붉다. 양옆으로 식당이 빼곡하다. 영업장이랄 것도 없다. 절반이 지붕 없는 집이다. 비라도 오면 난장판이다. 질척대는 바닥엔 곳곳이 물골이다. 천막에 고인 물은 짓궂은 장난거리다. 우산으로 올려진 천막 위 물이 어딘가에 물벼락을 때린다. 그 골목 사이로 어깨가 맞닿을 듯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저마다의 단골집으로 찾아 들어간다. ▶가게 입구 좌판이 곧 차림표다. 큼직한 돼지 머리는 기본 장식이다. 비닐에 덮인 순대가 김을 뿜어낸다. 덤으로 나갈 간과 내장도 소쿠리에서 대기 중이다. 4명씩 앉는 상 4개가 식당 안 전부다. 술상 모퉁이로 막걸리 병이 쌓인다. 고함을 질러야 대화가 된다. ‘더치페이’는 몹쓸 서양문화다. 누군가 한턱을 낸다. 배부르다 싶으면 1만원이다. 아니면 4인상 7천원으로 끝이다. 1970년대 수원 지동시장 순대 골목은 그랬다. ▶1990년대 말. 시장에서 LP 가스통이 사라졌다. 도시가스로 교체됐다. 진흙 바닥도 사라졌다. 수평 잡힌 콘크리트로 정리됐다. 뒤뚱거리는 나무 의자도 없어졌다. 온돌로 쩔쩔 끓는 방바닥이 놓였다. 후텁지근함을 참을 필요도 없어졌다. 상가 전체를 감아 도는 냉방이 서늘하다. 도(道)가 준 시설개선자금 5억원이 그렇게 바꿨다. 이제 목이 쉬어라 떠들지 않아도 된다. 옆 사람과의 불쾌한 무릎 접촉도 없어졌다. 가족 단위도 많고, 연인도 많고, 외국인도 많다. 지금은 가장 유명한 순대 타운이다. ▶그곳 토박이 ‘은주네’가 요즘 걱정이다. 장사가 예년 같지 않다고 한다. 시장 맞은편 통닭 골목에 치인다는 것이다. 그럴 만하다. 수년 전부터 뜬 수원 통닭이 가히 열풍이다. 방송 몇 번 타면서 최고의 관광코스가 됐다. 달콤한 통닭부터 고소한 통닭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시원한 호프까지 곁들여진다. 통닭집 앞에 늘어선 줄은 이제 일상이다. 그런 만큼 순대 골목에 빈자리가 난다. “지동 순대 골목도 잘 돼야 하는데…걱정이에요.” ‘은주네’ 얘기만 아니다. 순대 타운 상인들이 다 걱정한다. ▶그래도 어떤 이들에게는 순대 골목이 여전하다. 자리 틀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곳이다. 막걸리에는 역시 오소리 감투가 최고다. 지글지글 볶아대는 철판순대만한 회식 메뉴도 없다. 말만 잘하면 순대 한 접시가 슬그머니 들어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순대 골목에만 있는 ‘정’과 ‘역사’라는 맛이다. 그 정과 역사에 취한 순대골목파(派)들이 오늘도 약속한다. ‘오늘 저녁 순대볶음에 막걸리 한 잔 어때?’
김종구 논설실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