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쓴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아버지의 삶

박태원 작가의 맏아들,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 펴내

▲ 표지-소설가 구보씨의 일생

아들이 쓴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아버지의 삶…박태원 작가의 맏아들,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 펴내

“그저 나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나의 외삼촌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글인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쓴다는 것. 전쟁과 분단으로 빼앗겨버린 아버지에 대해 쓴다는 것. 그것은 무척 아름답고도 처절한 글쓰기이다.” -봉준호 영화감독(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외손자)

올해로 구보 박태원(1910~1986년) 소설가가 세상을 등진 지 30년이 됐다. 그는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섰다. 1933년 구인회(九人會) 일원으로 활동하며, <천변풍경>을 비롯해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풍속을 그린 세태 소설을 펴냈다. 해방 뒤에는 항일투사와 애국자들의 전기에 매달리다가, 1950년께 문우 이태준의 영향으로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과 생이별한 그는 북에서 망막염을 앓아 실명하고 뇌졸중으로 전신마비를 겪으면서도 재혼한 아내에게 구술하는 방식으로 <갑오농민전쟁>을 탈고한 뒤, 숨졌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을 살았던, 그러나 월북 이후 구체적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구보 박태원. 그의 맏아들인 팔보 박일영은 월북 이후 물음표로 남은 아버지의 행적을 재구성해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문학과지성사 刊)을 펴냈다. 열두 살까지 ‘구보씨’와 함께 살다 전쟁 때 헤어지면서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 아들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으며,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아들은 소설가 박태원의 문학적 성과 분석보다 아버지였던 ‘인간’ 박태원에 주목한다. 미국의 도서관에서 아버지의 자취를 찾고 옛 문헌을 하나하나 조사한다.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통해 구보의 북녘 가족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곳에서의 삶을 짐작했다.

 

크게 3부로 구성, 1부에는 구보가 태어나 가정을 꾸리기까지의 일화를 담았다. 경성 모던보이로 불린 구보의 트레이트 마크 ‘오갑빠 머리’와 ‘대모테 안경’ 등 독특한 외모에 얽힌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친일 의혹과 작품 활동에 관련된 시시비비를 아들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가리는 부분은, 뜨겁다.

 

2부는 해방 이후 야맹증이 심한 구보가 종군기자로 차출되고 ‘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에 뽑히는 등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가족의 이야기다. 3부에서는 남쪽 가족과 생이별한 후 끝내 반신불수가 되어 생을 마감하기까지 소설 쓰기를 놓지 않았던 천상 작가의 삶이 펼쳐진다.

 

‘피는 속일 수 없다’고 했던가. 아버지의 삶을 써내려가는 아들의 문장은 박태원 특유의 문체처럼 끊길 듯 끊이지 않고 물 흐르듯 이어져 부자(父子)임을 자연스럽게 방증한다. 수십 년 전 헤어진 아버지를 쫓던 아들이 ‘부치지 못한 편지’를 통해 담담하게 인사하는 맺음말은 뭉클하다. 값1만6천원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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