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페이(Dutch pay)는 ‘더치트리트(Dutch treat)’에서 유래한 말이다. 더치(Dutch)는 네덜란드인을, 트리트(treat)는 한턱내다, 대접하다라는 뜻이다. 더치트리트는 다른 사람에게 한턱을 내거나 대접하는 네덜란드인의 관습이었다. 그러나 영국 문화가 섞이면서 원래 뜻이 바뀌었다. 네덜란드는 1602년 아시아에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영국과 식민지 경쟁에 나섰다.
두 나라가 경쟁을 하면서 갈등이 깊어졌고 영국인들은 네덜란드인을 비하하기 위해 ‘더치’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사용했다. 영국인들이 대접하다라는 뜻의 트리트(treat) 대신 지불하다라는 의미의 페이(pay)로 바꿔 사용하면서 더치페이는 함께 식사를 한 뒤 자기가 먹은 음식 비용을 각자 부담한다는 뜻이 됐다.
같은 뜻으로 일본의 ‘뿜빠이(分配)’라는 표현이 있다. 일본도 더치페이 문화가 일상이다. 남녀가 데이트를 할때 비용을 절반씩 부담한다. 부부, 친구, 가족 사이에서도 더치페이 문화가 자리 잡았다. 남한테 폐 끼치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일본인들은 밥이나 술을 얻어먹게 되면 빚지는 것 같아 불편해 한다. 중국에는 ‘AA제(制)’라는 게 있다. 더치페이의 한국식 표현은 ‘각자내기’다.
더치페이는 한국문화와는 다르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할때 남자가 여자에게,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사는게 관례였다. 친구들 모임에서도 한 사람이 비용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근래 많이 바뀌었다. 젊은층에겐 더치페이가 더 익숙하다. 데이트 비용도 나눠내고, 친구들 모임에서도 1/n 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부담을 안주니까 오히려 편하다는 반응이다. 체면과 관계없는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나눔과 책임 문화라고 말한다.
더치페이가 일상화 되다보니 회사주변 점심시간 식당가는 각자 카드 결제를 하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룬다. 단체로 온 손님들이 5천~6천원짜리 밥값을 따로 내느라 줄을 길게 서있고, 식당 주인은 일일이 메뉴를 확인하며 계산을 하느라 진땀을 뺀다. 그래서 어느 식당엔 ‘개별 결제 불가’라는 안내문까지 붙였다.
계산하려는 손님들로 식당 입구가 복잡하자 식사하러 왔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부 식당은 자구책으로 식당 입구에 식권 자동판매기까지 설치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직장인들 지갑이 얇아져 더치페이가 확실히 자리매김한 모양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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