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신의 손 · 인간의 손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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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멕시코 월드컵 4강전. 아르헨티나가 영국과 맞붙었다. 영국 문전으로 공이 띄워졌고 167㎝의 마라도나가 뛰어올랐다. 190㎝ 골키퍼와의 경합이었다. 공을 건드린 건 마라도나였다. 핸드볼 반칙이었다. 하지만, 심판은 골로 인정했다. 아르헨티나가 2대1로 이겼다. 이어 결승에 올랐고 대회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경기 직후 마라도나는 ‘신의 손이 골을 넣었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반칙을 인정한 말이다. ‘정상적으로 넣은 골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악동 마라도나였지만 반칙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는 지킨 셈이다. 그리고 19년 흐른 2005년. 마라도나가 다시 한번 잘못을 인정했다. “신의 손이라고 했던 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골을 넣은 것은 내 손이었다.” 마라도나는 축구 황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그를 더욱 황제답게 만든다. ▶프랑스가 2010년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위기를 맞았다. 조 2위를 차지해 아일랜드와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피 말리는 접전이 이어지던 연장 후반 프랑스가 골을 넣었다. 여기도 ‘신의 손’이 등장했다. 골라인 밖으로 나가던 공을 앙리가 손으로 건드린 뒤 패스했고, 갈라스가 골로 연결했다. 프랑스는 월드컵에 나갔고 아일랜드는 나가지 못했다. 아일랜드 국민이 분노했다. ▶앙리의 사과는 즉각적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의식적으로 볼을 건드렸다’고 시인했다. 한 발 나아가 ‘FIFA가 재경기를 치르게 해줄 것을 원한다’고까지 했다. 앙리는 지단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축구 스타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익살스런 연기로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자칫 ‘신의 손’에 갇힌 불명예를 쓸 뻔 했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했고 팬들은 용서했다. 앙리는 지금도 프랑스 축구의 전설이다. ▶닮은 듯 다른 ‘신의 손’이 등장했다. 13일 코파 아메리카 조별 예선 페루와 브라질 경기에서다. 후반 30분 페루의 루이디아스가 오른손으로 공을 밀어 넣었다. 골문 주변에 설치된 7대의 카메라가 이 장면을 생생히 잡아냈다. 하지만, 골은 인정됐고 페루가 이겼다. 루이디아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손으로 넣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페루 선수들도 “허벅지에 맞았다”며 가세했다. ▶축구팬들의 비난이 쏟아진다. 루이디아스 뿐 아니라 페루 축구 전체가 욕을 듣고 있다. 반칙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이다. 반칙을 용서할 수 있으나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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