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경기도 청백리는 없나

류설아 문화부 차장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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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이 투명하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백성이 자기 이익만을 따져 폐단을 보고도 관에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 같은 사람은 관에서 마땅히 천냥의 돈을 주고라도 사야 할 사람이다.”

 

황해도 곡산에 부사로 부임한 정약용이 ‘불법 시위’를 주동해 수배자 신세였던 백성 이계심에게 한 말이다. 이계심은 전임 도호부사가 재직 중일 때 군영에 상납하던 군포 1필 값을 200냥에서 900냥으로 대폭 올려 징수하는 것에 분노해 백성 1천여명을 이끌고 관아에서 항의했다. 

관의 제압으로 백성과 이계심은 도망쳤다. 직후 정약용이 부임하자, 이계심은 백성의 고통을 전하며 자수했다. 정약용이 그를 체포하는 대신 이같이 말한 것이다. 정약용은 또 상납하는 모든 포목을 직접 자로 재 투명하게 받았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종종 회자되는 일화다. 왜? 해당 사건 속 인물상을 현실에서 찾기 힘들기에, 이상적 관료상 ‘청백리’를 갈망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청백리는 조선시대 청렴결백한 관리로 경기도에 연고를 둔 인물은 60여 명이다. 일부 학자는 청백리의 개념(평가기준 등)이 조선 후기 경기도의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조선 초 관료들의 도덕과 청렴만을 따지다가, 실제 민생 현장에서의 뛰어난 행정 능력과 공정한 재판 등 실천하고 책임지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설명이다. 경기도 정체성의 단초로 삼아도 될 만큼 유의미해 보인다.

 

지금 경기도에 실천하고 책임지는 청백리는 있는가. 작금의 ‘공공기관 통폐합’ 사태를 보면, 단연코 없다. 도는 경영합리화 명분으로 공공기관 통폐합(안)을 밝혔지만, 그 기반이 된 연구용역은 ‘엉터리’ 비난을 샀다. 그럼에도 도는 수개월째 명확한 방침도 밝히지 않은 채, 어떻게든 공공기관을 통폐합해 수치상 성과를 내겠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어림잡아 1천 명에 달하는 공공 문화예술기관 종사자, 그 가족까지 수 천 명의 생계가 걸린 이번 사태에 뛰어난 행정과 공정한 판단이 절실하다. 공공기관 경영합리화 명분은 충분했다. 잘못 전개될 수도 있다. 빨리 인정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면 된다. 백성을 위해 용기 내는 청백리.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류설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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