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가짜 손가락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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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7일 오후 9시 충북도청 직원 A씨는 음주 교통사고를 냈다. 혈중 알코올농도 0.154%의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가 신호 대기 중인 차량을 들이받았다. 경찰 조사를 끝내고 귀가 조처된 A씨는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도청 사무실을 찾아가 지문 인식기에 지문을 찍었다. 음주 교통사고를 낸 와중에도 초과근무수당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경북의 소방공무원 2명은 더 황당한 수법을 썼다. 실리콘으로 만든 자신들의 손가락 본을 부하 직원에게 주고 야근을 한 것처럼 지문 인식기에 체크토록 했다. ‘가짜 손가락’으로 챙긴 부당 수당은 각각 330만원과 300만원이었다. 이들은 초과근무수당 전액을 환수당했고 지난해 11월 해임됐다. 300만원의 공돈을 챙기다 평생직장을 잃었다.

 

공무원들이 초과근무수당을 부당하게 타내다 적발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일반공무원, 소방공무원, 경찰을 가리지 않는다. 10년 전만 해도 지방자치단체 서무담당 공무원들이 매일 하는 주요 일과 중 하나는 부서원 출·퇴근 시간 ‘조작’이었다. 모든 부서원의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퇴근 시간은 오후 11시로 기록됐다.

공공연한 관행으로 그걸 트집 잡거나 문제 삼는 사람도 없었다. 근무하지 않고도 초과근무수당을 챙기는 것인데, 한 달이면 1인당 평균 6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 시간이 발생했다. 그렇게 챙긴 초과근무수당은 부서 회식비 등 ‘공적 자금’으로 쓰여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07년 1월 수원시에서 초과근무수당 부정 수령 관행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2002년부터 5년간 부당 수령한 초과근무수당 액수가 333억4천700만원이나 된 것이 경기도 감사 결과 밝혀졌다. 이를 계기로 지자체와 교육청 등 전국에서 초과근무수당 부당 수령 행태가 속속 밝혀졌다.

 

주먹구구식 수당 신청 시스템이 문제였다. 서류 작성이나 카드 체크 방식으로 초과근무 시간을 파악하는 구조여서 허위 기재, 대리 체크가 어렵지 않았다. 공무원 야근수당 조작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지문 인식기가 도입됐다. 본인만이 체크할 수 있어 부당하게 초과근무수당을 챙기는 일은 사라질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시스템도 구닥다리가 됐다. 실리콘으로 만든 가짜 손가락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수법이 기상천외하다. 이젠 지문 인식기에서 정맥 인식기로 시스템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수법이 나올까 궁금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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