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금기(禁忌)의 선을 남 지사가 넘었다. 청와대와 국회까지 세종시로 옮기자고 했다. 당장 충청권이 쌍수를 들었다. “(남 지사가) 좋은 발언을 해주셔서 정말 환영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이춘희 세종시장). “수도권 단체장이 그 같은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안희정 충남지사). 충청권 언론도 남 지사 띄우기가 한창이다. ‘수도권 광역단체장인 남 지사의 소신 발언은 신선한 충격이다’(중도일보 사설).
역대로, 충청권에서 이런 대우를 받은 경기지사는 없다. 기껏해야 특강 몇 번 오가는 게 다였다. 내용 없는 종이에 상생하자고 서명하는 게 다였다. 그래 놓곤 이내 ‘지키는 자’와 ‘빼앗는 자’의 관계로 돌아갔다. 그런데 남 지사는 지금 충청권의 희망이다. 남 지사의 정치 감각을 또 한 번 보게 된다. ‘대통령 형 불출마 요구’ ‘국회 선진화법’ 등 위기 때마다 빛났던 그의 감각이다. 이번에도 정치권은 그가 던진 이슈로 빠져들고 있다.
근데, 이를 지켜보는 경기도민이 혼란스럽다. 많은 이들이 할 말을 잃고 있다.
수도 이전이 정국을 휩쓸었던 건 2004년 전후다. 그때 서울ㆍ경기ㆍ인천시민은 수도 이전에 반대했다. 경기ㆍ인천 시민 가운데 60~70%가 반대였다. 그 후 이런 여론 추이가 바뀌었다는 통계는 없다. 그렇다고 수도이전을 뒷받침할 새로운 어용(御用) 논리가 등장한 것도 아니다. 난데없이 ‘수도 이전’ 주장이 나왔다. 그것도 현직 경기지사가 주장하고 나섰다. 그때의 통계대로라면 도민 60~70%는 혼란에 빠져 있을 것이다.
‘Give-take’라는 기본 셈법도 없다. 수도 이전을 처음 주장할 때 남 지사는 “수도권 규제라는 낡은 틀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무슨 규제를 어디까지 풀자는 건지 설명하지 않는다. 충청도 지도자 누구에게도 수도권 규제 합리화에 협조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수도를 충청도에 주자’는 주장만 반복한다. 아마도 일방적으로 베풀겠다고 작정한 모양이다.
스스로의 모순도 있다. 대선에 대해 남 지사는 “경기도지사로서 일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군불을 지피는 건 수도 이전 이슈다.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일이다. 아무개 대통령을 탄생시켰던 세상 다 아는 대선 공약이다. 누가 봐도 정치 영역이다. 행정에 충실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말을 한꺼번에 하는 게 지금의 남 지사다. 경기도 행정에 충실한다면서 충청도 정치에 충실하고 있다.
잘 안다. 이게 다 대통령 실험이다. 도정 연정도 야당 연정을 위한 실험이다. 지방장관도 야당 장관을 위한 실험이다. 물론 가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절대 써먹으면 안 될 소재가 있다. 바로 수도(首都)다. 이 수도를 절대 건드리면 안 될 사람도 있다. 바로 경기도지사다. ‘경국대전 이후 관습헌법’이라고 헌재가 정의했다. 그 터전에서 600년을 산 도민이다. 그 도민이 뽑은 경기지사다. 왜 하필 그런 경기지사가 수도를 건드리나.
경기도민이 그래서 혼란스럽다. 환호에 빠져드는 충청권을 보면서 할 말이 없어진다.
그 충청도에서 전화가 왔다. 언론인이라고 했다. 남충희 전(前) 경기부지사에게 소개받았다고 했다. “남 지사의 지방장관 아이디어 평가가 어떠냐”고 물었다. “해볼 만한 새로운 시도”라고 답했다. “경기도민이 연정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싸우지 않으니 다들 좋아한다”고 답했다. “정말 경기도는 의회에서 싸우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난 2년간 결과와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고 답했다. 7분 내내 질문은 ‘남 지사’였다.
그런데 딱 하나, 그 ‘충청도 언론인’이 묻지 않은-틀림없이 물어볼 거라고 예상했었던- 질문이 있다. 수도 이전 주장에 대한 의견이다. 만일 물었다면 ‘경기도 언론인’은 이렇게 답하려 했다. ‘경기도민의 생각은 남 지사의 주장과 다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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