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10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말했다. “헬레니즘 문명은 그리스 문화와 동방 문명이 합친 것이다.” 자신의 한나라당 탈당을 새 문명 창출로 봐달라는 뜻이다. 그해 3월 19일,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이에 앞서 전국을 돌며 장고(長考)했다. 뒤를 쫓는 기자들과 숨바꼭질까지 했다. 그 탈당을 설명하며 내 놓은 논리가 ‘헬레니즘 문명’이다. 너무 어려웠다. 2009년 10월, 그에게 물었다. “화두가 너무 어렵다.” 그가 웃으며 답했다. “내 철학적 고민이 너무 깊은가.” ▶후배 기자는 이런 경험도 말했다. 손 전 지사가 기자들과 오찬을 했다. 기자가 “수원에 온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손 전 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밥 한 숟가락을 모두 소화했다. 그리고 나서 답변을 시작했다. 기자는 훗날 “그 몇 분 동안 민망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 술회했다. 손 전 지사 화법의 또 다른 버릇이다. 질문을 듣고 곧 답하지 않는다. 손 전 지사의 말에는 이런 특징이 있다. 뒤늦게 말하고 게다가 어렵다. ▶손 전 지사의 이런 습관은 중요한 시기에 더욱 빛(?)난다. 향후 계획을 명확히 말하지도, 빨리 말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내리는 결론이 특별하지도 않다. 2007년 전국을 돌며 기자들을 애태웠다. 결론은 예상대로 한나라당 탈당이었다. 2008년 총선 패배 책임을 진다며 춘천 산속으로 들어갔다. 굳게 닫힌 그의 입이 찾아온 기자들의 속을 태웠다. 2년 뒤 내린 결론도 예상대로 정치 일선 복귀였다. ▶이제 그의 스타일을 웬만한 기자들도 안다. 명쾌한 답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선문답 풀이하듯 접근한다. 강진에 칩거한 뒤로 이런 대화와 보도가 많아졌다. 남루한 차림의 그가 던지는 한 마디에 언론마다 주석을 단다. “강진이 더 지겨워서 못 있겠다고 하면…”-‘손 전 대표가 정계복귀를 시사했다’고 썼다. “이제 올라가야죠”-‘손 전 대표의 정계복귀가 임박했다’고 썼다. ▶지금 그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구애를 받고 있다. 김종인 대표가 직접 요청했고, 국민의당 지지자들은 강진까지 찾아갔다. 그의 입이 또다시 굳게 닫혔다. 어느 당으로 가겠다는 답은커녕 정계 복귀 여부조차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더디고 어려운 ‘손학규 말’이다. 물론 이번에도 결론은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정계로 복귀할 것이다. 가는 쪽은 몸값 높은 곳일 테고….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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