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팍팍~ 마 음만은 ‘허세 셰프’도 울고갈
쉼터 청소년 위한 따뜻한 ‘밥한끼’ 든든한 ‘희망한끼’
맛과 서비스가 그리 뛰어나지도 않았고 매장 규모도 작았지만 단순히 집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평소대로 그곳을 찾았던 어느 하루.
허리도 굽고 얼굴에 주름꽃이 만개한 할머니 한분이 껌과 초콜릿 등 각종 주전부리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가게로 들어왔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는 테이블마다 다가가 거나하게 취한 손님들을 대상으로 판매를 시도했지만 늘상 거절되기 일쑤였다.
잔정이 조금은 있는 기자가 어줍잖게 주머니에 있는 천원짜리 지폐 몇장을 꺼내려고 할 때, 한쪽 구석에서 식사중이던 가게 사장이 할머니를 불러 세웠다. 영업방해를 운운하며 쫓아낼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식사는 하시고 돌아다니시냐”면서 파고드는 추위를 막기 위해 할머니 얼굴을 칭칭 감은 목도리를 걷고 함께 식사를 권했다.
잠시 쭈뼛거리던 할머니는 사장과 함께 찌개와 밑반찬 등이 놓인 테이블에 앉아 몇 술을 뜨셨고 옆 테이블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는 사장의 작은 배려로 제공된 ‘따뜻한 밥 한끼’가 찬 바람에 얼어붙은 할머니의 몸을 녹이는 것 같아 왠지 모를 짠함이 밀려왔다.
‘따뜻한 밥 한끼’는 먹는 사람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훈훈하게 해주는 감동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인의 추천으로 위기 청소년들에게 수년째 정성어린 음식을 제공하는 청소년 쉼터 ‘FOR YOU’의 급식봉사활동 일일체험에 도전했다.
지난 6일 오전 10시께 방문한 동안구 호계동 소재 안양시단기청소년쉼터 ‘FOR YOU’. 비행의 유혹과 유해환경으로부터 남자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상담, 문화체험 활동을 비롯해 사후관리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곳은 청소년들이 정상적으로 가정과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다.
특히 의식주를 포함한 생활관리를 지원하는 이 곳에는 현재 30여명의 학생들이 해당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이곳 쉼터 ‘FOR YOU’와 인연을 맺은 후 수년째 무료 봉사를 펼치고 있는 이씨는 한창 먹을 나이의 학생들의 식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정량보다 넉넉한 음식 재료를 장만한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이씨와 함께 건강하고 맛있는 식단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채소 손질을 마친 뒤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양념장 만들기는 이씨 옆에서 필요한 재료를 조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물, 간장, 설탕, 올리고당 등 수십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사천리로 양념을 제조하는 이 봉사원의 비법(?)을 구경하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참기름이 조금 더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참기름 통을 슬쩍 들어 숟가락에 작은 양을 담아 양념장에 넣었다.
“설탕을 조금 더 넣으면 달달하겠죠?”라며 슬쩍 한 손에 설탕을 붓고 ‘할까말까?’를 고민하다가 웃음과 맛 두가지 중 어떠한 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잠정적 판단을 내린 후 슬그머니 설탕을 싱크대에 버렸다.
조리모와 앞치마를 두른 채 학생 한명 한명에게 눈 인사를 하며 정성껏 배식 봉사활동에 나섰지만 어색한 기운 탓인지 학생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 끝에 “소불고기 좀 더 주세요”라며 K군(18)이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그제서야 나머지 학생들도 자신들이 선호하는 반찬을 더 요구했다.
이후 미안한 마음에 급하게 주방으로 자리를 옮기니 그 짧은 시간 안에 반 이상의 식기들이 정리돼 있었다. 남은 식자재 정리라도 돕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고 정리에 나서려 하는데 장갑안에 스며있던 물끼가 느껴졌다.
게다가 바닥에 튄 물에 양말까지 젖으니 까탈스러운 본능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이 정도 도왔으면 됐으니 그만 쉬라”는 이씨의 말에 순간적으로 ‘그만하고 잠시 동안이라도 양말을 벗고 말릴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 나선 체험의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아 조용히 뒷정리를 도왔다.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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