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삼성동 현대차 사옥 주변 상가가 호황이다. 현대차 신분증을 패용한 고객이 식당마다 가득하다. 점심 시간 때는 자리가 없어 줄을 설 정도다. 아침식사를 대신해 주문하는 토스트를 배달하는 커피숍도 숨돌릴 틈이 없다. 모든 게 ‘현대차 식권’ 덕이다. 한 끼니 6천원짜리다. 지역 상권을 살리려고 현대차가 도입했다. 계열사 직원들도 계획보다 앞당겨 입주시켰다. ‘MK(몽구)식 사회공헌’에 쏟아지는 상인들의 찬사가 대단하다. ▶90년대 말, 용인시청도 같은 시도를 했다. IMF로 휘청대던 상권보호를 위해 ‘식당 밥 팔아주기’를 시작했다. 시청 내 구내식당을 강제로 폐쇄했다. 대신 공무원들에게 3천원의 식대가 지원됐다. 주변 식당가가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이제는 지자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군(軍)에도 ‘지역 식당 밥 팔아주기’가 등장했다.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장병 수십 명에 상인들이 환호하고 있다. 모든 게 시(市), 군(軍)이 지역에 베푸는 사회공헌이다. ▶상인들에게 관(官)은 기업이다. 경기도는 매출 20조원짜리 기업이다. 수원시는 매출 2조원짜리 기업이다. 매출 20조 기업이면 경기도 기업 중에도 손꼽히는 규모다. 매출 2조원 수원시는 삼성전자 다음으로 큰 지역기업이다. 점심 저녁으로 쏟아져 나오는 공무원들이 주변 상인들을 먹여 살린다. 구내식당에서 밥 먹는 공무원이 청백리라 여겨지던 건 옛말이다. 공무원은 이제 지역 상권의 주요 고객이다. 주변 상권을 키워야 할 소비 주체다. ‘수원시청 공무원’이나 ‘현대차 직원’이나 다를 게 없다. ▶김영란법이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식비가 3만원을 초과하면 형사처벌을 받거나 과태료를 문다. 주변 식당 주인들이 걱정한다.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인 저녁 회식이라도 아차 하면 3만원을 넘는다. 순간 ‘3만원짜리 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예상되는 정신적 부담도 크다. 회식 또는 단체 오찬 자체를 기피할 수 있다. ‘3만원 계산하며 먹느니 차라리 안 먹겠다’는 심리가 확산될 수 있다. ▶‘공무원 3만원’은 이제부터 감시의 기준이다. 수사기관에는 ‘입건 기준’이 됐고, 언론기관에는 ‘취재 기준’이 됐다. 툭하면 식당으로 수사관ㆍ기자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리곤 주인에게 공무원 아무개의 계산서 좀 보자고 할 것이다. 가히 ‘김(영란법)파라치’ 수준의 들쑤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데도 ‘식당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뭔가. 김영란법은 행동 강령이 아니라 형사처벌법이다. 반성문에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라 공소장에 지문을 찍는 것이다. ‘고깃집 생계 걱정’을 괜한 소리로 여기면 안 된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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