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詩가 있는 스크린도어

박정임 경제부장 bak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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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갈 일이 있으면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노선이 복잡한데다 갈아타려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정시성(定時性)’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비싼 주차요금도 지하철을 이용하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에는 한 가지가 더해졌다.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에 전시된 詩(시)가 주는 즐거움이다. 비록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의 짧은 시간이지만 시를 통해 얻은 느낌은 비교적 오래간다. 

▶스크린도어는 지하철도나 경전철 승강장 위에 고정 벽을 설치하고 문을 여닫게 한 장치다. 평상시 유리벽으로 막혀 있다가 전동차가 승강장 홈에 완전히 멈추면 전동차 문과 함께 열린다. 승객이 고의나 실수로 선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해 주는 안전장치다. 전동차의 소음과 강풍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영국에서 처음 도입했으며 우리나라에는 지난 2004년 개통된 광주지하철 1호선에 최초로 설치됐다. 

▶서울시는 2008년 고단한 출퇴근길, 등하굣길에 오른 시민에게 위로와 희망, 행복을 건네주려는 방편으로 스크린도어에 시를 적었다. 현재 서울 지하철 1∼9호선과 지하철 분당선 등 299개 역 승강장 스크린도어 4천840면에 다양한 시가 전시돼 있다. 시민들은 광고물의 홍수 속에 참신한 기획이라며 찬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작품 선정 과정과 일부 작품의 수준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작품 선정 대상을 현역 시인과 시민으로만 제한해 이미 세상을 떠난 유명 시인의 작품과 외국 시 등은 접할 수 없다는 것도 불만을 샀다. 최근 서울시가 ‘스크린도어 詩 운영 개선 계획’을 내놓은 이유다. 현재 현역 시인 시 65%, 시민 시 35% 비율로 전시되던 것이 국내외 애송시 70%, 시민 시 30% 비율로 바뀐다. 

▶작품 선정에 공정성을 기하고자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시 작품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평론가, 독서지도가, 외국 대사관 추천 등을 통해 50%를 선정하고, 나머지 50%는 시민 투표로 뽑는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작품은 기존대로 공모한다. 스크린도어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김춘수의 ‘꽃’, 윤동주의 ‘서시’ 등 추억이 담긴 시를 읽을 날도 멀지 않았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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