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현대판 노예 ‘만득이’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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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7년 여름, 중개업자를 통해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소재한 농장에 들어오게 됐다. 소 44마리를 키우는 축사에서 매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소똥 치우는 일을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만득이’로 불렀다.

 

그가 살던 방은 축사에서 2m 정도 떨어진 2평 남짓한 쪽방이었다. 축사가 바로 앞이다 보니 방에는 분뇨 냄새가 진동했고, 문 앞엔 늘 분뇨가 널려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축사일과 밭일을 병행했다. 농장주인인 60대 부부는 지적장애가 있는 그에게 가족을 찾아주거나 사회복지시설 등에 신고하지 않고 감금했다. 가혹행위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년간 ‘축사 노예’ 생활을 했지만 마을주민 중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70대 노모는 아들이 집을 나섰다가 행방불명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주민등록 말소를 하지않고 기다렸다. 아들과 어머니는 자동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도 만나지 못했다.

 

아들의 존재는 지난 1일 축사 인근의 한 공장 건물에서 비를 피하다 경보음이 울려 출동한 경비업체 직원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외부로 알려지게 됐다. 이어 지난 15일, 노모와 아들은 드디어 상봉을 했다. 노모는 상처 투성이 아들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노예처럼 살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20대 청년이 어느새 40대 후반의 중년이 돼있었다.

 

지적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리며 인권을 유린해 국민의 공분을 산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차고에서 생활하게 하면서 임금도 주지않고 농사를 시킨 2009년의 ‘차고 노예’ 사건, 임금을 떼어먹고 가혹 행위를 하면서 염전에서 일을 시킨 2014년의 ‘염전 노예’ 사건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축사 노예’라니 경악할 노릇이다.

 

이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복지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우리 주변엔 ‘제2, 제3의 만득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 장애인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반인륜적 학대행위 엄단을 외치지만 제대로 된 장애인 실태조사도 하지 않았다. 

소리만 요란할뿐 실행이 안되면서 끔찍한 사건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적장애인 전수 조사와 함께 인권유린 방지대책을 마련해 이같은 비극을 막아야 한다. 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려 먹고 학대한 파렴치범에 대해선 엄벌에 처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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