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검사와 돈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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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검사는 특수통이라 불렸다. 1990년대 후반 수원지검에 근무했다. 당시 토착비리 수사의 중심이었다. 서부공단 비리, 경찰서장 비리, 행정공무원 비리, 언론 비리까지 훑지 않은 영역이 없다. 그의 사무실은 늘 기자들로 북적였다.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를 대형 사건이 그곳에 있어서다. 깡 마른 체구에 크게 웃는 법도 없다. 그런 모습이 비리 공무원들에겐 저승사자였고, 기자들에겐 버거운 벽이었다. ▶그런 그가 가끔 보여줬던 의외의 모습이 있다. 신문의 ‘주식시황’을 들여다보는 모습이다. 한번은 주식이 올랐던 모양이다. “생태찌개 먹으러 가자.” 또 한 번은 주식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왜 난 사는 것마다 떨어지지. 괜히 용돈만 날렸다. 하여튼 돈 몇만원만 주머니에 있으면 쓰지 못해 안달이라니까.” 두고두고 기억나는 장면이다. 지역을 벌벌 떨게 하는 특수검사가 주식 시황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지금은 가난한 변호사로 부지런히 살고 있다. ▶P 차장검사는 유명한 마약 검사다. 지역과 인연이 많았다. 수원, 인천, 평택에서 근무했다. 가는 곳마다 마약사범을 초토화했다. 총알택시 마약 운전사도 적발했고, 지금은 국민 개그맨 소리를 듣는 아무개도 구속했다. 마약에 관한 한 그만한 독종이 없다. 그런 그가 마약정보만큼이나 잘 아는 게 있다. 주유소별 휘발유 가격 차이다. 그가 생활하는 주변의 큰 주유소 가격은 훤히 꿰뚫고 있다. 그리고 반드시 5원이라도 싼 곳을 찾아간다. 함께 탄 일행이 짜증을 낼 정도다. 지금도 맞벌이하며 악착같이 살고 있다. ▶이들과 전혀 다른 검사가 등장했다. 진경준 검사장이다. 넥슨 회장으로부터 4억2천500만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넥슨의 비상장주식 1만 주를 샀다가 팔았다. 그 돈으로 다시 넥슨 주식 8만5천주를 샀다. 이번에는 넥슨재팬이 일본에 상장되면서 주식이 폭등했다. 이렇게 자기 돈 한 푼 없이 120억원을 챙겼다. 진 검사장은 금융정보분석원, 금융조세조사부장 등 금융범죄를 다루는 보직을 거쳤다. 넥슨은 그의 잠재적 수사 대상이었다. ▶‘힘 있는 자가 돈까지 있으면 안 된다.’ 검사의 부(富)를 보는 일반인의 시각이다. 검사는 인신 구속권을 갖고 있다. 그런 검사가 재산까지 모았다면 이상하게 보는 게 당연하다. 몇 십만원어치 주식에 울고 웃던 특수부 검사, 5원을 아끼겠다며 주유소를 배회하던 강력부 검사. 그런 검사들의 재테크(?)에는 기자들이 웃었다. 하지만, 진 검사장의 120억 재테크에는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그가 1천명의 검사 가운데 단 한 명의 별종(別種)이기를 바란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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