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아닌 금기였다. 애초 취재 대상이 안 됐다. 설혹 기사가 작성되더라도 곧 몰고(沒稿)됐다. 선배로부터는 핀잔이 날아든다. “너 잡지사 기자냐.” 여기서 ‘잡지’란 70, 80년대 유행하던 몇몇 성인 책자다. 수영복 차림의 여성 사진으로 도배되는 선정적 잡지였다. 그럴 만큼 성(性)과 관련된 얘기는 일간(日刊) 신문의 금기였다. 섹스, 매춘, 외도 등이 다 포함됐다. 이런 주제들을 통칭해 ‘허리 아래 얘기’라고 불렀다. ▶그랬던 언론이 변했다. ‘허리 아래 얘기’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가장 자극적이고 가장 읽히는 소재다. 현직 검찰총장도 ‘허리 아래 얘기’로 옷 벗었다. 혼외자가 세상에 알려지자 낙마했다. 검찰총장의 ‘침대 얘기’가 여과 없이 보도됐다. 현직 검사장을 추락게 한 ‘허리 아래 얘기’도 있다. 길 가던 여성을 쫓아다니며 음란행위를 했다가 사달이 났다. 검찰총장의 혼외자 논란도, 검사장의 음란행위 논란도 일간 신문이 보도했다. 해당 언론사는 특종보도라며 자화자찬했다. ▶요즘은 더 하다. 박유천(뮤지컬 배우), 유상무(개그맨), 이진욱(탤런트) 등 유명 연예인들의 ‘허리 아래 얘기’가 이어진다. 기사마다 ‘화장실’ ‘속옷’ ‘관계’ 등 선정적 단어가 그득하다. 급기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매춘 의혹 보도까지 나왔다. 이 회장의 말, 표정, 행동을 몰래 촬영한 동영상이 방송됐다. 인터넷 매체의 단독 보도였다. 동영상이 국민에게 준 충격이 크다. 그 속에서 일고 있는 논란도 많다. 와병 중인 중환자의 과거 동영상 보도가 옳았느냐는 게 주제다. ▶언론의 ‘허리 아래 얘기’ 무차별 보도. 여기엔 무너진 신문의 위상이 있다. 정보 독점 기능을 빼앗겼다. 인터넷이 더 빠르고 더 노골적이다. ‘허리 아래 얘기’는 그 중에도 가장 파급력 센 주제다. 인터넷 조회수로 신문 광고 수입이 결정된다. 일간 신문이 쫓아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래도 일간 신문인데’ 따위의 망설임은 버린 지 오래다. 인터넷을 쫓아가는 우울한 일간 신문의 현실이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것도 있다. ‘허리 아래 얘기’라는 말이 깔고 앉은 의미가 있었다. ‘남자라면 그럴 수 있다’라는 관용이었다. 그리고 그 관용 속에는 ‘남자니까’라는 남성 우월주의가 있었다. 이제 다 옛말이다. 더 이상 성(性)은 남성에게 유리하지 않다. 오히려 성공한 남성을 파멸로 내몰 시한폭탄이 됐다. 이게 20년 전 남성사회와 지금의 남성사회의 차이다. 그 시절이었다면 이 글도 틀림없이 쓰레기통으로 갔을 거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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