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유럽 수출길… 新車 3천대를 옮겨라!
한 달 평균 2만8천대의 국산 신차가 인천항을 통해 수출된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수출 현장에서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자동차 전용 선박에 선적하기 위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직접 체험하면서 수출역군이 된 양 자부심마저 들기도 했다.
인천항은 평택항 등 경쟁항에 밀려 자동차 물동량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 물류클러스터 조성이 추진되면서 자동차 수출 전용부두도 건설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자는 하루 동안 세계 방방곡곡을 누빌 국산 자동차의 먼 여정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선적 전 과정을 체험했다.
■ 세계 누빌 국산 자동차의 위용
지난해 인천항을 통해 수출된 국산 신차는 31만7천대에 달한다. 중고차까지 포함하면 50만대에 육박한다. 올해 상반기에만 신차 16만5천대, 중고차 10만7천대가 이곳 인천항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진출했다. 인천항은 명실공히 자동차 수출의 메카인 셈이다.
7월 29일 인천내항 야적장을 가득 채운 국산 신차는 우리나라 제2의 무역항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자동차의 행렬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대의 사열과 같은 모습이었다.
세계 유수 자동차와의 전쟁같은 경쟁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국산 자동차는 국제무대 진출을 앞두고 엔진을 멈춘 채 서 있었다. 유럽 등 머나먼 곳으로의 여정을 앞둔 국산 자동차는 내려앉은 먼지를 씻어주는 여름 비를 맞으며 세계를 대표하는 명차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첫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산 자동차의 행렬 너머로 유럽으로 싣고 갈 자동차 전용 선박인 카르멘(CARMEN)호가 입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간 GM에서 생산한 신차 3천대가 카르멘호에 실린 뒤 유럽으로의 여정을 떠나기로 돼 있었다.
■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날 국산 신차의 선적은 인천항만공사와 인천항운노동조합, 하역업체인 선광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인천항운노조 이경우 차장은 “자동차 선적의 최대 관건은 얼마나 빠른 시간에 정확하게 이뤄지는가에 달렸다”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선적하기 위해 모든 일이 분업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야적장에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에는 고유 인식코드인 바코드가 붙어 있다. 이 바코드는 자동차의 기본 사양과 함께 도착할 국가가 입력돼 있다. 또 선내 고박될 위치 정보까지 포함돼 있다. 야적장 바닥에 고유 번호는 바코드에 입력된 정보를 토대로 결정돼 있다. 야적에서 선적까지 모두 5번의 확인과정을 거쳐야 한다.
선광 김민철 감독은 “GM에서 자동차를 실어오면 바코드 입력정보에 맞게 야적장 바닥에 고유번호에 맞춰 야적하게 된다”며 “이때 첫 확인 작업이 이뤄지고, 선박에 오르기 전에 바코드 확인 작업을 한 번 더 거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선박에 올라간 자동차는 이미 정해져 있는 선내 층수 등 위치에 주차하고 나서 선내 3번째 검수가 이뤄진다”며 “선내 바닥과 고정하는 라이싱 작업을 마친 뒤 고박작업 중 발생할 수 있는 흠집이나 이상 여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고박까지 마친 자동차는 마지막 스캐닝 작업을 모두 마친 뒤 선박과 함께 인천항을 떠나게 되는 시스템이다. 자동차 선적 전 과정은 모두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철저하게 분업화 돼 있다. 선박 내로 자동차를 싣는 드라이빙 작업, 자동차를 검수하는 스캐닝 작업, 자동차를 선박에 고박하는 라이싱 작업 등 전문성을 갖춘 근로자들은 궂은 날씨에도 각자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 야적장에서 선박까지 ‘안전 선적’ 특명!
바닥에 고유번호와 야적된 자동차의 정보가 맞는지 확인 작업을 했다. 선광 김민철 감독과 자동차의 외관을 꼼꼼히 살폈다. 얼짱 각도보다 비스듬한 15도 시선에서 자동차의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스크래치나 흠집을 잡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후 드라이빙 작업을 직접 체험했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국산 신차는 그 나라의 운전 시스템에 맞춰 생산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와 달리 오른쪽 좌석에 운전석이 있어 운전이 낯설었다. 하지만 23년 무사고 운전실력으로 곧 익숙해질 수 있었다.
야적장에서 선박 내로의 이동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선내 고박 위치에 정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주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드라이빙 기사님의 도움으로 주차를 시도했다.
양옆 다른 자동차와의 간격은 주먹크기인 10cm, 앞뒤 간격은 30cm에 불과하다.
자칫 접촉사고가 우려되는 순간이다. 주차를 돕는 기사님과 드라이빙 기사님들 사이에 정해 놓은 신호가 있다. 호루라기를 한 번 불면 반 바퀴를 돌리게 돼 있었다. 이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주차가 이뤄지고 있었다. 기자는 세계 곳곳을 누빌 국산 신차에 조금이라도 흠집이라도 생길까 우려돼 주차는 전문가에게 아쉽게 맡겨야 했다.
■ 세월호의 교훈… 고박작업 만전
정확한 라인에 주차된 차에 2~3명의 고박(라이싱)작업 근로자들이 달라붙었다. 기자는 고박에 필요한 장비를 나르며 라이싱 작업자들을 도왔다. 앞뒤 각각 2개의 케이블 양쪽은 고리로 돼 있었고, 이 고리를 선박 내 바닥 구멍에 고정시킨 뒤 최대한 케이블을 팽팽하게 조이는 작업이 라이싱 작업이다.
선박이 운항 중 심하게 움직여도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이 작업은 2~3차례 확인 작업을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는 김민철 감독의 설명이었다. 김민철 감독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잘못된 고박 작업으로 인해 발생했다”며 “이 때문에 가장 신경 써야 할 작업이 바로 이 라이싱 작업이다”고 강조했다.
기자는 케이블 고정부터 팽팽하게 조이는 작업을 함께하면서 먼 길 떠나는 자식을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온 정성을 쏟았다.
■ 비와 땀… 뿌듯함으로 씻어내다
자동차 전용 선박은 철선이다. 이 때문에 여름이면 선박 내는 용광로를 방불케 한다. 선박 내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자동차 엔진 열이 더해져 금새 땀으로 젖었다. 이날 간간이 내린 비는 더위를 식혀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날 1천500대의 국산 신차를 카르멘호에 실었다. 긴박한 작업 탓에 긴장을 늦출 겨를이 없었고, 선박을 오가며 비인지 땀인지도 모른 채 옷이 모두 흠뻑 젖었다. 어느새 야적장에 있던 자동차 반이 선박에 무사히 선적됐다.
나머지는 다음날 모두 마친 뒤 선박은 유럽으로 향하게 된다. 빈 야적장에는 또 다른 국산 신차들이 또 가득할 터다. 비든 땀이든 상관없다. 하루 동안의 수출역군이 된 기자는 뿌듯함에 삼복더위에 시원함마저 느꼈다.
서툴기만 한 기자의 체험을 도와준 김민철 감독과 다음에 꼭 소주한잔을 하자며 인사를 나눴다. 기자의 체험이 시간을 요하는 전문 근로자들의 작업에 방해됐음은 분명하다. 그래도 이해해 주신 모든 근로자들과 인천항만공사, 인천항운노조 등 관계자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을 전한다.
정민교기자
사진=장용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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