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박태환의 ‘은퇴’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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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준비하면서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연습 때보다는 (오히려) 잘한 겁니다.” 그도 그럴게 장미란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에 허리 부상까지 겹쳤다. 경기 직전 몸살도 앓았다. 그 몸으로 용상 170㎏ 역기 앞에 섰다. 최고 기록 187㎏에 턱없었지만 이 무게도 무리였다. 바벨을 들어 가슴에 얹었다. 그러나 더는 들어 올리지 못했다. 역기는 뒤로 떨어졌고 도전은 실패했다. ▶다음 순간, 장미란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명장면이 나왔다. 잠시 숨을 몰아쉰 그의 얼굴에 세상 없는 평온함이 흘렀다. 무릎을 꿇고 잠시 기도를 한 그가 역기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관중에게 손을 흔들며 플랫폼을 내려왔다. 경기 직후 인터뷰는 더 감동적이었다.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국민들께서 그동안 장미란을 응원해주셨는데 실망감을 드렸을까 봐 그게 가장 염려가 됩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메달을 딴 선수들도 열심히 했을 겁니다. 축하해주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2012년, 국민 영웅 장미란은 그렇게 은퇴했다. ▶박태환은 장미란과 국민 오누이로 불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땄다. 자유형 400m 금메달, 자유형 200m 은메달이었다. 4년 뒤 올림픽에서도 400m 은, 200m 은을 땄다.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무려 6개의 메달을 따냈다. 그랬던 박태환에게 위기가 왔다. 2014 아시안게임 이전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인 네비도를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모든 메달이 박탈됐다. ▶올림픽 규정에 따라 2016년 3월 2일까지 자격이 정지됐다. 이 규정만으로는 리우 올림픽 출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규정은 2019년까지 대표팀 발탁이 불가능했다. 이때부터 박태환의 ‘출전 욕망’이 이어졌다. 언론 앞에 무릎을 꿇고 출전을 애원했다. 그래도 풀리지 않자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에 제소도 했다. 결국, 중재재판소의 결정으로 박태환은 리우로 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자유형 400m 예선 탈락, 200m 최하위 예선 탈락이었다. ▶신체 능력은 퇴화한다. 그래서 모든 운동선수는 은퇴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은퇴의 시기다. 앞서 장미란의 은퇴는 더없는 사랑을 받았다. 최선을 다했고, 떠날 때를 알았다. 그런데 또 다른 ‘국민 오누이’ 박태환은 다르다. 금지 약물로 명예를 더럽혔고, 하소연과 재판으로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와 멀어진 능력도 인정하지 않았다. ‘때’를 놓친 것이다. 리우 현지에서 그가 “이번이 수영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다. 더 잘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인터뷰 했다고 한다. 언제까지 국민 영웅의 초라한 뒷 모습을 봐야 하나. 국민들 맘이 안 좋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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