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 표지-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 표지-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오래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 등장한 시대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정성 가득한 음식과 술을 음미하는 풍경은 찾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슬로우 푸드의 대명사이자 정성이 담긴 우리나라 종가 43곳의 음식 문화를 소개하는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담앤북스 刊)는 급변화는 환경과 지나치게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며 단절되고 사라지는 전통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했다.

 

현재 영남일보 문화부 부장으로 활동 중인 저자 김봉규는 종가의 음식 문화를 이어오던 종부들이 별세 또는 더 이상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연로한 상태에서 후계자도 마땅치 않은 현실을 인식했다. 이후 지난 2014년 6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비교적 잘 전승되고 있는 종가를 취재해 신문에 연재했다. 이 책은 보도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책은 단순히 음식 소개가 아니라 음식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음식도 역사’임을 방증, 일종의 ‘음식 문화사’다. 종가에 전해 내려 온 음식, 술의 유래와 역사, 그것에 담긴 사연이나 일화, 소개한 술과 음식을 만드는 법, 전승 현황 등을 담았다.

 

각 종가마다 내려오는 음식 속에는 넉넉한 때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구례 류이주종가에는 ‘누구나 열 수 있다’는 의미의 ‘타인능해’를 써 놓은 쌀뒤주가 있다. 무관 류이주(1726~1797)가 누구라도 그 날 필요한 만큼의 쌀을 자유롭게 가져가게 해 배고픔을 없애겠다는 마음으로 마련해 쌀 두 가마니를 항상 채워뒀다고 한다. 후손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모범적으로 실천, 동학혁명과 한국전쟁에도 종가 고택과 쌀뒤주가 살아남은 이유다.

 

내려오는 음식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인물 이야기도 흥미롭다. 윤선도, 류성룡, 명성왕후, 전봉준, 안희제 등과 관련된 내림 음식과 술이 있다.

 

예로 의령 백산종가에서 내려오는 ‘망개떡’을 따라 올라가면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1885~1943)가 등장한다. 망개떡은 그가 좋아했고 독립운동 동지들과 나눠 먹었던 귀한 먹거리였다.

 

“독립운동 하시느라 집에 계실 때가 잘 없었고 가끔 한 번씩 집에 들르셨는데, 다시 집을 나서실 때 망개떡을 비롯해 많은 떡을 보자기에 싸 가지고 가셨다고 합니다. 독립운동을 함께하던 동지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서였지요.”(지금도 망개떡을 만들고 있는 안희제의 손녀 안경란)

 

이처럼 책은 종가의 문화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이자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임을 제시한다. 값 1만7천원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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