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지동(池洞)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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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집·호신당(虎神堂)·산신당(山神堂). 수원시 지동 못골에 있던 마을 제당이다. 위치는 산업 도로 창룡문 사거리 방향 담대 고개의 중간 지점 오목한 곳이다. 예전에는 낮은 산이 있었다. 1982년 이 당집이 헐렸다. 호신당이라는 이름은 이 당집이 호랑이 신을 모시고 있는 데서 기인했다. 산신당이라는 이름 역시 호랑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민간 신앙에서 호랑이는 곧 산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호랑이 출몰. 1973년 1월부터 76년 2월까지 지동 동장을 역임한 이희탁의 증언이다. “아주 어렸을 때예요. 밖으로 나오니까, 아 글쎄 화등잔만 한 시뻘건 불이 보이지 않아? 그게 호랑이 눈이었지. 너무 놀랐는데 부친께서 나오셔서 그걸 보시더니 그쪽으로 무릎을 꿇고 진지하게 비시는 거예요. 그러자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산으로 올라갔지.” 이후 마을 사람들이 당집에서 정성껏 제를 올렸고 호랑이는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화약고 고개 또는 화약 고개. 현재 지동 여울 아파트와 제일 교회 인근이다. 지금도 일대에서 가장 가파르고 높은 고개다. 이 고갯길이 팔달문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 고개에 ‘화약고 고개’라는 이름이 붙은 건 일제 강점기다. 일제가 화약을 쌓아놓았다 해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그만큼 군사적 요충지였다. 공교롭게 지금도 수원을 조망하는 ‘노을빛 전망대’가 이곳에 설치돼 있다. ▶지동 이야기는 강(强)하다. 신(神), 호랑이, 전쟁 등의 단어가 어우러져 있다. 근대 이후 지동의 역사도 그랬다. ‘미나리꽝 시장’ ‘지동 시장’ 등 거친 삶의 현장이 자리했다. 작은 동네임에도 ‘지동파(派)’라는 폭력 조직이 득세한 시절도 있었다. 아직도 지동 곳곳에는 점집, 사당들이 많다. 경기 남부 최대 규모로 꼽히는 수원제일교회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래저래 지동은 수원시민들 사이에 ‘기(氣)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지동이 ‘방범 시범 마을’로 지정된 것도 아이러니다. 몇 해 전 발생한 충격적인 강력사건 때문이다. 수원시는 CCTV 28개, 보안등 115개를 설치했다. 경기도는 이곳을 ‘따복안전마을’로 지정했다.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마을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경기일보 취재진이 현장을 둘러봤다. 여전히 불안감이 감돈다고 전한다. 효과가 없는 것이다. 안타깝다. ▶어쩌면 방법이 틀렸는지 모른다. 1만5천명이 살고 있는 수원시 동쪽 마을 지동. 이곳은 본디 따뜻한 곳이고 활기 넘치는 곳이었다. 호랑이, 산신의 전설은 그런 지동역사의 강함을 더해주는 양념이었다. 그런 지동의 옛 모습을 찾는 것 역시 따뜻함과 활기일 수 있다. 돌아가는 감시 카메라와 지나가는 경찰차는 동네를 더 을씨년스럽게 할 수도 있다.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보자.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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