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감사하며 보냈다. 청명한 하늘에 서늘한 바람이 그렇게 고맙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찜통 더위에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는 사람들이 “이젠 살았다”며 미소 지었다. “가을이 오긴 오나보다”며 반가워했다.
한반도를 강타한 폭염이 서늘한 바람에 한풀 꺾였다. 하지만 폭염이 남긴 상처는 크고 깊다. 콜레라ㆍA형간염ㆍ진드기질환 등 각종 후진국형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표적인 후진국 전염병인 콜레라가 국내에서 15년 만에 발생한 것은 충격적이다. 질병관리본부는 해수 온도가 5도 상승한 것을 콜레라의 원인으로 보고있다. 콜레라균이 ‘플랑크톤→어패류→사람’으로 이동해 바닷가에서 회를 먹은 사람이 콜레라에 걸렸다는 것이다.
해상과 육지의 온도가 올라가면 세균이나 진드기·모기 등 질병 매개 동물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실제로 1~8월 작은소참진드기가 옮기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에 54명이 걸렸다. 털진드기가 매개하는 쓰쓰가무시 감염자도 최근 3년 평균의 3.5배인 926명이 걸렸다.
올해 말라리아 환자는 524명으로 3년 평균(456명)보다 많다. 옴·머릿니·결핵 같은 과거 전염병도 활개치고 있다. A형간염도 급증해 올 들어 3천331명이 감염됐다. 2013~2015년 같은 기간 평균(990명)의 3.4배다.
냉방병인 레지오넬라증 집단감염이 우려돼 인천의 한 모텔이 폐쇄됐다. 물탱크·수도꼭지·샤워기와 각 층의 냉수·온수에서 균이 발견돼서다. 건물 폐쇄는 처음이다. 올해 레지오넬라증 환자는 지난해 3배인 75명이나 된다.
생태계도 변화를 겪었다.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구상나무가 바짝 말라 죽었다. 지리산과 한라산ㆍ태백산 고지대에 사는 상록침엽수지만 이상고온과 가뭄 때문에 집단 고사했다. 도심에서는 말벌이, 농경지에선 미국선녀벌레 같은 해충이, 상수원에서는 녹조가 기승을 부렸다.
지구온난화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이같은 상황은 반복될 것이다. 폭염이 지나갔다고 안도할 게 아니라 국가적인 폭염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상예보부터 정확성을 제고해야 한다.
더위 정보뿐 아니라 폭염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ㆍ경제적 영향까지 알려주는 ‘영향예보’를 해야 한다. 또한 전쟁에 대비해 군사력을 보유하듯 감염병도 대처능력을 키워야 한다. 새로운 병원체와 외래종 유입에 대비해 모니터링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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