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무대가 마련된 ‘7080’ 술집이다. 들어서자마자 이규택 전 의원이 바빠졌다. 무대에 놓인 악기 가운데 ‘색소폰’을 보고서다. 폭탄주 몇 잔이 돌고 일행이 먼저 노래를 불렀다. 그 틈에도 이 전 의원은 홀로 바빴다. 무대를 오르내리며 무언가를 살폈다. 술도 마시는 둥 마는 둥 했다. 색소폰 연주를 위한 준비였다. 자신의 악기와 무대 기기를 맞춰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날 연주는 이뤄지지 못했다. 단념하고서도 그의 눈은 한참 동안 무대 위 색소폰을 바라봤다. ▶네 번이나 국회의원을 한 관록의 정치인이다. 그런 그의 색소폰 사랑은 유별나다. 정치 행사장에서도 기회만 되면 색소폰을 불었다. 낙선 후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절반 가까이 ‘색소폰 연주하는 이규택 전 의원’이다. 서울종합예술학교 석좌교수 시절엔 학생들 앞에서 연주했고,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시절에는 손님들 앞에서 연주했다. 그에게 색소폰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멤버들 모아지면 그룹을 만들어서 연주 봉사하려고….” 아쉽게도 ‘이규택 밴드’가 결성됐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색소폰 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아칸소 주지사 시절, 군악대에 섞여 색소폰을 불었고, 대통령 선거 유세 때는 쉰 목소리로 연설 대신 색소폰을 불었다. 우리 정치에도 ‘색소폰 정치인’은 많다. 심재철 의원(안양 동안을)은 시민 축제에 참석해 연주실력을 뽐냈다. 정우택 의원(청주 상당)은 연말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현장에서 연주했다. 청중의 반응은 대체로 좋다. 번지르르한 인사말이나 구태의연한 정치구호보다 훨씬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색소폰을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끈적거리는 음색에서 묻어나는 호소력이 있다. 음량이 풍부해 스피커 없이도 야외 연주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협주할 악기가 없어도 독주가 가능한 것도 매력이다. 무엇보다 관객의 시선을 얼굴로 끌어 모으는 악기다. 손으로 하는 연주가 아니라 입으로 하는 연주다. 벅찬 숨을 몰아쉬며 땀을 뻘뻘 흘리는 열정적인 얼굴에 관객의 시선이 꽂힌다. 이런 장점들이 정치인의 차 트렁크에 색소폰을 자리하게 하는 모양이다. ▶경기도의회 정기열 의장(더불어민주당ㆍ안양 4)의 색소폰 사랑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특별한 독주회를 했다.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모시고 했다. 정치인의 방문이라면 이골이 났을법한 할머니들이다. 그 할머니들에게 지방 정치인이 바친 색다른 선물이었다. 보기에 특별했다. 정치인이 보여준 비(非) 정치적 행위가 특별했고, 연정 계산에 바쁜 도의회를 뛰쳐나간 모습이 특별했다. 정치가 색소폰과 만나 봉사로 이어진다는 것. 썩 괜찮은 조합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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