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마을박물관, 동네미술관을 찾아서

영국에서 지도책을 보고 운전하던 때다. 우연히 작고 낯선 마을에 들어섰다. 한적한 시가지 중심에서 박물관 이정표를 보고 주민센터 2층에 있는 마을박물관을 찾았다. 

전시된 유물들은 2천 년 전 로마 군인이 흘렸을 법한 동전에서부터 죄다 깨어진 그릇들과 사소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대영박물관에 비교한다면 결코 전시실에 나올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감동은 가득했다.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는, 그것 자체가 뿜어내는 이야기는 평범한 옛사람들의 체취를 그대로 맡을 수 있었다.

 

영국의 박물관은 3천500개에 달한다. 이런 작은 박물관들은 수많은 관광객들을 영국으로 불러들이는 토대를 이룬다. 세계적 유명 인사가 아니더라도 마을의 역사를 형성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의 개인박물관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박물관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외지인들을 위한 문화관광코스 개발만이 목표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을 잊지 말자는 의미도 크다.

일상의 거리 문화를 바꾸는데,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형성에 정주 공간을 위한 문화기반시설이 덧보태져, 방문객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박물관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보기 위해 만들어졌다. 반드시 ‘위대한 어떤 것’을 보지 않아도 관람객들은 ‘작은 삶의 교훈’을 타인을 통해 얻기 마련이다.

 

지난해 미술관 개관 특별전으로 수원 시민들의 ‘사연’을 담은 ‘아주 사적인 이야기’ 전시를 만든 이유가 그것이다. 40여 년간 모아온 월급봉투의 변천사를 통해 당대의 문화와 삶의 기억이 고스란히 전달되기도 했다. 

한 개인에 관한 추억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자화상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점 미술관의 역사적 탄생도 그렇다. 광활한 러시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 일리야 레핀의 <저녁 모임> 단 한 점의 그림으로 전시가 이루어졌다. 

단순히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소재가 된 깡충거리는 러시아 민속춤과 민속음악이 그림을 보기 전에 들려지고 커튼이 젖혀지면서 그림을 보는 방식이다. 반세기도 전에 1점 미술관은 복합예술공간으로 출발한 셈이며, 그림은 명화의 의미를 넘어서서 지역주민들 스스로 ‘생활의 역사’에 자긍심을 갖게 했다.

 

21세기의 미술관은 도시의 얼굴이며 도시를 바꾼다고 한다. 거점이 되는 대형미술관 박물관도 필요하지만, 도시의 오래된 골목과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작은 미술관들은 예술적 감동은 물론이고 사람과 사람을, 어제와 내일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작은 미술관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전승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전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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