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삼성의 통 큰 리콜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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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 2천여 명의 삼성전자 직원이 ‘품질 확보’라는 머리띠를 두른 비장한 모습으로 속속 집결했다. 운동장엔 15만대에 달하는 휴대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10여 명의 직원이 쌓인 휴대폰에 해머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박살난 제품들에 불을 붙였다. 모두 500억원어치의 휴대폰이 재가 됐다.

 

삼성전자 휴대폰 성장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애니콜 화형식’ 장면이다. 당시 애니콜은 초기 모델이었던 탓에 제품 불량률이 11.8%에 달했다. 이에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시오”라는 이건희 회장의 불호령에 따라 불량 휴대폰들이 공개 화형에 처해졌다.

 

타고 남은 재가 소중한 밑거름이 되듯 잿더미 속에서 애니콜은 다시 태어났다. ‘불량은 암이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품질경영에 나섰고,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난 휴대폰의 성장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 삼성전자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등이다.

 

승승장구하던 삼성 휴대폰이 또 한번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노트7 일부에서 배터리 결함이 발견돼 전량 리콜을 결정한 것이다. 100만대 중 24대가 불량이어서 불량률은 0.0024%에 그치지만 삼성은 첫 폭발 사고 발생 9일 만에 ‘250만대 전량 리콜’이라는 신속하고 통 큰 결정을 내렸다. 전대미문의 대규모 리콜에 적게는 1조 5천억원, 많게는 2조 5천억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란 추정이다. 경쟁사 애플이 신제품을 내놓은 시기와 리콜 시점이 겹쳐 손실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이번 배터리 폭발은 삼성전자에 뼈아픈 사건이다. 갤럭시노트7은 삼성 스마트폰 최초로 홍채 인식이라는 혁신적인 기술 탑재로 세계인들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고, 물량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그렇기에 출시 한 달 만에 이뤄진 리콜로 삼성전자는 큰 비용 부담과 함께 제품과 기업이미지에 타격이 예상된다.

 

하지만 신속하게 리콜을 결정하면서 소비자에게 제품의 완벽성과 안전을 우선시한다는 믿음을 줬다. 제품에 대한 불안감에 일시적으로 등을 돌릴 수도 있지만 삼성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면 장기적으로는 제품의 신뢰성과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득이 될 수 있다. 삼성의 통 큰 결정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돼 향후 삼성이 벌이고 있는 다양한 신사업 분야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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