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났다. 이번에도 명절 후유증이 만만찮은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야 할 명절이 신체적ㆍ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통과의례로 바뀐지 오래다. 명절이 배우자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멍절’로 전락해 버렸다.
설이나 추석 명절을 지내고 난 뒤 사이가 나빠지는 부부들의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가 및 처가와의 갈등이 부부 불화로 이어지고, 깊어진 갈등의 골은 이혼 증가로 이어져 ‘명절 이혼’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명절 이혼은 이제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통계청이 얼마 전 발표한 ‘최근 5년간 이혼통계’에 따르면 설 명절인 2월과 그 다음 달인 3월, 추석 명절인 9월과 다음 달인 10월 사이 이혼건수를 분석한 결과 전달 대비 평균 이혼건수가 11.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법원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설 연휴인 2월 접수된 이혼 소송 건수가 2천540건인데 반해, 다음 달인 3월 접수된 이혼 소송 건수는 3천539건으로 무려 39.3% 증가했다. 설 연휴만큼은 아니지만 지난해 추석연휴가 끼었던 9월에서 10월 넘어가는 사이 이혼 소송 건수는 3천179건에서 3천534건으로 소폭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지난 10년간 이혼 소송 증가율 통계에서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명절 연휴에 서로의 가족을 만나며 화목을 다지기보다 서로 만나지 않으며 감춰왔던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불신과 불만 등 해묵은 감정들이 명절을 지나면서 회복하기 힘든 앙금이 되고, 결국 파국적 결말로 나타나는 것이다.
명절 이혼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가사 노동과 이로 인한 고부갈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최근엔 처가와의 갈등 등으로 남성이 먼저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명절이 화합의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가족에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평소 갈등이 생길 때 충분한 대화로 문제를 풀고, 매년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 상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남녀 성평등 의식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명절을 남성 위주, 시가 위주로 지내는 관습은 여전하다. 명절 직후 부부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미리 합리적인 명절 계획을 수립하고 서로에게 많은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간의 대화와 소통, 배려는 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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