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정상화 외침 속 요동치는 사교육] 1. 허울 뿐인 정책

뜬구름 잡는 자율화 학원가만 배불린다

야간자율학습 폐지’,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 등 연일 공교육 정상화를 표방하는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이들 정책이 학생들의 학습자율권을 보장하는, 공교육 정상화에 한걸음 다가가는 토대를 마련한다며 환영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을 수반하는 현행 교육입시제도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같은 정책들이 오히려 사교육 시장의 쏠림 현상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에 본보는 공교육 정상화 정책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사교육 시장으로의 유입이 아닌 정상적 공교육이 가능토록 하는 다양한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학원가 일대로 유명한 안양 평촌동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A씨는 최근 자유학기제 프로그램 시간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진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직업체험관을 찾았지만, 이곳에서까지 학원 숙제를 하는 학생들 때문이었다. A씨는 “교내·교외활동 할 것 없이 자유학기제 시간에 학원 과제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이를 못하게 하면 학생들은 ‘학원에서 숙제량을 늘려서 지금밖에 할 시간이 없다’고 항변해 할 말이 없다”고 토로했다. 

인근 중학교 교사 B씨도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들은 자유학기제 시행으로 자녀들의 ‘시험 감각’이 무뎌질까봐 염려하고 있다”면서 “학원에서 학부모들을 모아놓고 자유학기제 시행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설명회까지 열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한 학기 동안만이라도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고 토론·실습 수업이나 진로교육 등을 통해 학생들의 꿈과 끼를 찾을 기회를 준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정책이다. 하지만 시험이 사라져도 아이들의 ‘학원 등원’이 지속되면서 사설 학원의 배 불리기에 기여하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교육 쏠림 현상’을 유발하는 것은 자유학기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이 공교육 정상화 방안으로 내놓은 ‘9시 등교’, ‘방과후학교’, ‘야자 폐지’ 등도 일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일선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교육체감도가 정책을 내놓는 교육당국과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입시제도가 경쟁을 수반하는 체제에서 자율을 모토로 하는 이들 공교육 정상화 정책들은 아직 시기상조이며, 이에 불안감을 갖는 학부모들이 결국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학원들도 자율을 강조하는 이들 공교육 정책의 맹점을 악용, 빈틈을 파고드는 것도 문제다.

 

수원의 한 영어학원 관계자는 “시험부담이 없는 만큼 문법 등 평소 부족했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충하는 시기로 (아이들이)활용하고 있다”며 “학원 입장에선 자율을 강조하는 공교육 정책으로 호기를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안양의 한 국어학원 관계자도 “야자 폐지, 자유학기제 시행 등으로 학부모들의 문의가 지난해보다 훨씬 많아졌다”면서 “학생들의 자율을 보장한다고 해도 입시제도의 큰 틀인 경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큰 것을 잃을 수 있다”고 불안감을 부추겼다.

 

이를 뒷받침하듯 교육부가 발표한 2015년 전국 초·중·고교 사교육비 조사 결과, 지난해 사교육비 규모는 약 17조8천억 원으로 집계됐으며 시도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서울(33.8만 원), 경기(26.5만 원) 순으로 많았다. 특히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은 최근 3년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전체 사교육비 시장의 56.5%를 차지하고 있다.

 

자녀 사교육비로 매달 100만 원 가까운 비용을 지출하는 화성의 한 공립중학교 교사 C씨는 “자율적인 학교 분위기와 정책도 좋지만 부모 입장에서 자기 통제력이 부족한 아이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자율권을 보장하는 학교보다는 학원에 보내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이만희 경기도진학교육협의회장은 “공교육 현장에서 여러 시도를 통해 제도를 바꾸다 보면 신뢰도가 떨어져 결국 입시공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교육에 매달리게 된다”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선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와 교사에 권한을 더 주거나 사교육 시장을 억제하는 강력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규태 정민훈 유선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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