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한국에서 태어난 김모씨는 17살이 된 198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10년 동안 병역 의무를 미룬 채 1995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귀화한 김씨는 1997년 돌연 귀국해 한국에 눌러앉았다. 영어강사 등으로 돈벌이까지 하며 ‘한국사람’ 행세를 했다.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국적상실 신고를 해야 하지만 이를 계속 미뤄 2002년에야 김씨의 한국 국적이 말소됐다.
병역 의무는 2006년 만38세가 되자 자동 면제됐다. 미국 시민권을 얻어 군대를 면제받은 가수 유승준의 사례와 판박이다. 황당한건 김씨가 2014년 “다시 한국인이 되고 싶다”며 국적 회복 신청을 한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병역을 기피할 목적의 국적 상실이 명백하다’며 국적 회복을 불허했다.
김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까지 냈지만 법원도 김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법원은 지난 8월 “병역 의무가 생기기 1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했고 미국 귀화 이후에 한국에서 계속 체류해온 점, 병역 의무가 면제된 지 2년 만에 국적 회복 신청을 한 점 등을 비춰보면 병역 기피 목적이 다분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김씨처럼,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받은 남성이 매년 수천명에 이른다. 2013년 3천75명, 2014년 4천386명에 이어 올해는 7월까지 4천220명이나 된다. 올해 입영자 수가 27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입영 자원 65명 중 1명이 국적 포기로 입영 대상에서 제외된 셈이다.
지난 5년간 병역의무 대상자(18~40세) 가운데 국적 포기자는 1만7천229명에 이른다. 이중 유학 등 장기 거주로 외국 국적 취득 후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경우가 90.4%(1만5천569명)에 달한다.
부모의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지위가 뒷받침돼야 자녀가 유학 등으로 장기 체류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결국 금수저·흙수저론이 병역의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병역 불평등’에 대한 한탄이 나올만하다.
병무청은 국적 포기를 통한 병역 회피를 막기 위해 이른바 ‘유승준 방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적을 이탈·상실한 사람에 대해 상속세와 증여세 등을 중과세하고 국적 회복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아들일 경우 공직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병역면제를 위한 국적포기자가 늘수록 국민의 분노도 높아진다. 권력층과 사회지도층 자제의 병적 관리 강화가 시급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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