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반기문盃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기자페이지

말레이시아 ‘메르데카컵(Merdeka Cup)’, 태국 ‘킹스컵(King’s Cup)’, 대한민국 ‘박스컵(Park’s Cup)’. 1970년대 축구 팬들을 흥분시키던 아시아 3대 축구대회다. ‘메르데카(Merdeka)’는 말레이어로 ‘독립’을 뜻한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해 1958년에 창설됐다. 킹스컵은 태국 국왕이 주관하던 대회로 1968년 시작됐다. 박스컵은 1971년 시작된 대회로 1회 대회 공식 명칭은 ‘박정희 대통령배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다. ▶말레이시아는 국왕의 생일을 휴일로 지낸다. 태국은 쿠데타의 마지막 절차가 국왕의 인증이다. 국왕이 갖는 상징성이 그렇게 크다. 하지만 축구대회에 국왕의 실명은 들어가지 않는다. 통치자의 실명-박정희-이 들어간 대회는 대한민국의 ‘박스컵’뿐이었다. ‘오바마盃 국제 축구대회’ ‘시진핑盃 국제 축구대회’인 셈인데…. 독재권력에서나 있을법한 추억이다. ▶지난 9월 3일과 4일 충북 음성에서 유소년 축구대회가 있었다. 전국에서 60개 유소년 클럽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그런데 대회 명칭이 ‘제1회 반기문컵 하반기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다. 현직 유엔사무총장의 이름을 땄다. 반 총장이 주관했을 리 없다. 그래도 ‘반기문컵’이라는 실명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다. 축구뿐만 아니다. ‘반기문 태권도대회’ ‘반기문 마라톤대회’ ‘반기문 동요대회’에 ‘반기문 백일장’ ‘반기문 리더십학교’까지 있다. 이게 충청도, 그리고 음성의 현재 정서다. ▶반기문 대망론이 추석 보름달처럼 차올랐다. 연휴 직전 여론 조사에서 반 총장이 다른 후보군을 압도했다. 경쟁자들이 반 총장 흠집 내기에 들어갔다. ‘정치 경륜이 없다’ ‘카리스마가 없다’ 등의 부정적 평가를 쏟아낸다. 실제로 그렇다. 반 총장에겐 정치 경륜도 없고 카리스마도 없다. 하지만 긍정론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세상없어도 반기문 대세론은 흔들리지 않는다’며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그들 스스로 쑥스러워 말하지 않지만 이유는 단순하다. ‘충청도 표’다. ‘반기문컵 축구대회’에서 짐작케 되는 충청도의 압도적 지지다. ▶충청도를 얻는 후보가 권력을 쥐었다. 김대중 후보에게는 ‘충청-호남 연합’이 있었고, 노무현 후보에게는 ‘충청 수도이전’이 있었다. 이제 그 충청이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로 등장하려 한다. ‘대통령 만드는 충청’이 아니라 ‘대통령 되는 충청’이 되려고 한다. 이게 반기문 대망론의 실체다. 충청 여론을 독재하지는 않지만 독점하고 있는 그의 힘이다. ‘박정희盃’ 이후 처음 보는 ‘반기문盃’가 대망론의 요체다.

 

김종구 논설실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