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속에서 오류가 보인다. 남북 간의 국방력을 비교하는 대목인데, 대통령 노무현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군이 방위력이 얼마만큼 크냐. 정직하게 하자… 대개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 (남북 국방력이) 실질적으로 역전된 것으로 보지 않습니까. 85년에 역전됐다고 보면 벌써 20년이 지났어요… 정직하게 보는 관점에서 국방력을 비교하면, 이제 (미군) 2사단은 뒤로 나와도 괜찮습니다.” 군사력이 우리쪽으로, 그것도 오래전에 기울었다고 했다.
대통령만큼 국방력의 실체를 아는 이는 없다. 그런 현직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한 장담이다.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20년 전에 북한은 핵기술을 사들였다. 그 10년 전쯤부터는 플루토늄(Pu)을 뽑아내고 있었다. 2006년 10월 9일엔 1차 핵실험까지 했다. 대통령 연설은 그 해 12월 21일에 있었다. 핵실험 두 달 뒤에 현직 대통령이 국민에게 “우리가 훨씬 강하다”고 장담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의도된 거짓이거나 심각한 오판이다.
과학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북핵 미사일의 시작은 90년대다. 1991년 소련이 붕괴했다. 미국이 막대한 돈을 소련에 퍼부었다. 우주 공학과 핵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수챗구멍이 생겼고 그 출구가 북한이었다. 밥줄 끊긴 소련 학자들이 들어갔다. 그때 들어간 기술이 지금의 북한 기술이다. 북한식 핵이 됐고, 북한식 미사일이 됐다.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기술 이력(履歷)이 증명하고 있다. 우주 공학자 이창진 교수의 진단도 그렇다.
하기야 노 대통령에게만 뭐라 할 일은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다 그랬다. 국방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다. 엄살로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고, 과장으로 국민을 자만에 빠뜨리기도 했다. 엄살은 독재(獨裁)로 쓰였고, 과장은 반미(反美)로 쓰였다. 그사이 신뢰는 없어졌다. 이제 대통령이 말하는 국방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다. 대신 국민이 스스로 판단한다. 지금 내리는 국민의 판단은 ‘남북 군사력은 핵무기로 완전히 기울어져 버렸다’다.
핵 보유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 국민 75%가 북한의 5차 핵실험을 ‘위협적’이라고 답했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 때보다 14%p나 높아졌다. 핵 보유에 대해서도 58%가 ‘가져야 한다’고 답했다. ‘가지면 안 된다’(34%)보다 20%p나 높다. 같은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하락했다. 이게 국민 생각이다. ‘북한 핵이 무섭고, 믿을 수 있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핵이다’라고 판단하고 있다. ‘핵 보유’가 정치 이슈에서 생존 이슈로 바뀐 것이다.
그래도 들을수록 명연설이다. 오판이 섞였지만 메시지가 분명했다. “미국 응댕이 뒤에서 숨어 가지고 ‘형님 빽만 믿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자주의식을 말했다. 이제 그의 말대로 ‘미국 응댕이’ 뒤에서 튀어나올 때다. 때마침 그 근거를 국민이 만들었다. ‘핵으로 무장하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손에 쥐어진 더 없는 무기다. 못 이기는 체 따라가면 된다. ‘핵 보유’에 채웠던 금기를 깨고 ‘핵무장’을 말하면 된다. 미국까지 들리도록 크게 말하면 더 좋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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