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 내 이름을 찾아주세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폭주(?)한 골프 약속 덕분에 스코어카드에 8자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 탄력받았을 때 자주 필드에 나가 싱글의 반열에 올라야 하는데 지난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본격 시행되면서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됐다. 10월과 11월 골프 약속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골퍼들은 캐디백에 보통 이름을 쓰는데 일부 공직자들과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종종 본인의 이름이 아닌 가짜 이름을 쓰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실명은 ‘홍길동’인데 캐디백에는 ‘임꺽정’을 써 놓은 경우다. 골프 접대로 김영란법 적용의 첫 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앞으로 가명을 써야 하느냐는 고민에 빠진다.

 

과거 즐겨 보던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강백호, 서태웅, 송태섭 등 이중 하나 골라잡아 백네임을 바꿀까. 그런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 A선배도 골프백 이름을 바꿀 생각이라며 ‘최경주’로 한다고 했다. 또 B후배는 미국식으로 ‘우즈팍’이라고 짓겠다 했다. 다들 농담이었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남의 이름을 도용할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지난달 지인들과 라운딩을 갔는데 스코어카드에 전혀 모르는 여성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내심 기대하고 있는데 우락부락하게 생긴 ‘상남자’가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같이 간 선배도 급실망했다. 백에 가명을 적어 놓았는데 그것이 여성스러운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 골프장에서 실명 쓰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골프를 치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다. 친목을 도모하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즐기는 스포츠에서 가명을 써야 하는 이유가 뭘까.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로 가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공정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차량 트렁크에 실려 있는 골프백에 자신의 이름을 찾아주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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