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여성들에게 여행은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남이 차려주는 밥상은 다 맛있다’며, 밥상을 챙기지 않는 그 자체로 행복해 한다. 추석이나 설 명절에 겪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고된 가사노동이다. 몇박 며칠 명절음식과 설거지, 청소 등 가사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황폐해져 부부간 갈등이 극심해지고, 이혼으로 치닫기도 한다.
최근까지도 가사노동은 사회학자들에 의해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사회학적 성차별주의 때문이다. 남성 사회학자들에게 있어 가사노동은 노동이 아닌, 그들이 남편으로서 받을 권리가 있는 서비스라고 봤다. 가정주부는 ‘경제적으로 비활동적인 사람’으로 정의됐다.
결혼을 하면 여성은 가정주부가 된다. 결혼과 함께 가사노동은 여성의 전담분야가 된다. 어떤 남편들은 가끔 ‘협조’도 하지만 이것은 선물로 간주됐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가정’이란 전통적인 성역할이 고정돼 있어서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사노동의 기계화, 가정의 민주화, 가사노동의 사회화 등의 경향이 두드러지고 가사노동에 드는 노력과 시간이 점차 감소됐다. 가사노동이 재평가되고 가사노동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도 확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사노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확대되고 경제활동이 늘어났어도 가사노동의 책임은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 직장을 다녀도, 은퇴를 해도 마찬가지다. 주부들의 가사노동은 정년이 없는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일본의 한 출판사가 설문조사한 결과, ‘아내에게 정년이 있느냐’는 질문에 92%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럼, 아내의 정년은 언제인가라는 것인데 가장 많은 답이 ‘남편이 사망했을 때’였다. 부부는 남편이 퇴직한 후 일상생활에서 더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
남성은 은퇴해 집에 돌아온 순간부터 정년 이후의 삶을 사는 반면 아내는 여전히 현역이다. 퇴임 후 일터가 없어진 남편이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집에서 먹기도 한다. 매번 밥상을 차려야 하는 아내는 가사 업무량이 더 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하는 일 없이 티비 보고 신문 보고 밥 먹는 남편이 미워지기도 한다.
부부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가사노동을 나누는 수 밖에 없다. 요리하는 남편이 돼 스스로 밥을 챙겨먹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는 것이다. 여성의 일인데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일을 ‘함께 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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