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오감이 괴로운 ‘감각공해’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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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여동생과 함께 방을 썼다. 동생은 잠을 잘 때면 벽시계를 떼어서 장롱 이불 속에 넣곤 했다. 째깍째각, 초침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자기 어렵다고 했다. 좀 예민하다, 유별나다 생각했는데 동생에게 그 소리는 거슬리는 공해였던 거다.

 

공동주택의 층간소음을 둘러싼 이웃 간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단순한 갈등이 아닌 살인과 폭력, 방화 같은 강력사건으로 번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소음, 진동뿐 아니라 빛 공해도 도를 넘어섰다. 과도한 인공조명 탓에 밤에도 대낮처럼 밝아 편안한 휴식과 수면을 방해한다. 우리나라의 빛 공해는 주요 20개국(G20) 중 두 번째로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빛 공해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도 크게 늘어 최근 3년간 연평균 3천건이 넘는다.

 

세계보건기구는 심야에 일정 밝기 이상의 빛에 노출되면 생체리듬 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돼 면역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빛 공해에 시달리는 사람은 비만과 불면증, 암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부가 2013년 ‘빛 공해 방지법’을 만들었지만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 소음·진동·빛·악취 등 다양한 공해와 맞닥뜨린다. 미각·후각·시각·청각·촉각 등 오감을 괴롭히는 이들 생활형 공해를 ‘감각공해’라 한다. 문제는 점점 감각공해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감각공해로 전국 지자체에 신고·접수된 민원건수는 12만5천건에 이른다. 소음과 진동이 10만6천283건으로 가장 많고, 빛은 3천670건, 악취는 1만5천573건이었다.

 

‘악취 방지법’이 2005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 악취 민원은 계속 증가 추세다. 도심에서 발생하는 생활악취 근원지는 음식물쓰레기·정화조·소각시설 등이다. 여기에 소위 먹자골목에서 발생하는 역한 냄새도 빼놓을 수 없다. 악취는 후각을 통해 불쾌감을 줄 뿐 아니라 눈·호흡기 계통에도 자극을 주고, 기체 상태의 물질에 따라 두통과 구토를 수반하며 식욕감퇴와 스트레스도 일으킨다.

 

감각공해는 사회적 피로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사람들이 다소 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면 살인 등 강력범죄로 번진다. 서로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중요하다지만 이것만으론 안된다. 일상 생활에 불쾌감과 스트레스를 주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감각공해에 대한 정부의 환경정책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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