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먹방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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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먹방(먹는 방송) 전성시대다. 케이블TV, 인터넷방송은 물론 공중파에서도 먹방이 한창이다. 먹방은 꽤나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방송사의 ‘핫’한 아이템이라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맛깔스러운 음식사진을 너도나도 블로그나 SNS에 올려놓고 자랑한다.

식도락이라고 하면 지지 않는 서구인들이 봐도 우리나라 먹방의 인기는 이례적인지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장기 경제 침체로 인하여 한국인에게 널리 깔려 있는 불안감과 불행 때문’이라는 보도를 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전체가구 수의 35%를 차지하여 대한민국 대표 가구형태가 된 1인가구(793만명) 시대에 혼자 밥 먹는 이른바 ‘혼밥족’이 늘면서 TV의 먹방이 같이 먹어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희망 잃은 3포세대의 마지막 욕망’이라고도 한다.

 

이 같은 내용을 보면 먹방의 인기요인은 먹음직스러운 음식이나 맛나게 먹는 모습 때문이 아니라 현대인의 심리적 허전함과 불안감, 뭔가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 같은 무의식을 파고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음식은 어느 민족에게나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음식은 국경을 초월하여 민족정체성이나 신앙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원초적 방법이며 살아온 환경과 역사 속에서 형성된 체질의 DNA다. 여기에 우리 민족에게 밥상은 식구(食口)가 둘러앉아 일상생활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서로의 안녕과 가족애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잘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을 때, 반가움과 고마움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때 “밥 한번 같이 먹자”고 하는 것도 음식을 통한 교감을 그만큼 중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문화와 음식 전문가인 아사쿠라 도시오 일본국립민족학박물관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식의 특징은 정(情)”이라고 규정했는데, 유독 음식을 정서와 결합하는 우리 식문화를 간파한 말이라 생각한다.

 

먹방이 유례없는 인기를 구가하고 혼밥, 혼술, 집밥이 유행어가 된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혹시 지금 맛있는 음식을 보고 있거나 밥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면, 휴대전화를 열어 함께 먹을 사람을 찾아 연락해보는 건 어떨까. 이제 미각과 허기만 채우는 차가운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와 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음식을 드시기 바란다.

 

우리 청소년들도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대신 누구와 먹을지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아갔으면 한다.

 

김영규 수원시청소년육성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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