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세종시에 있는 대통령 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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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자하문’은 ‘창의문’의 애칭이다. 그 자하문 밖에서는 가끔 궁궐의 사관들이 한 뭉치의 한지를 갖고 나와 흐르는 물에 먹물을 씻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임금들의 행적을 빠짐없이 기록한 사관들이 그것을 모두 정리한 뒤 초본을 가져다 물에 담가 씻어내는 것이다. 먹으로 쓴 글씨여서 물에 담그면 잘 지워졌다. 이것을 궁궐에서는 세초(洗草)라 했다.

 

이렇듯 세초를 하는 것은 혹시 초본이 돌아다녀 왕의 기밀사항이 유출되지 않을까 하는 것과, 당시에는 귀했던 종이를 다시 재활용하는 뜻이 있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유네스코는 일찍이 실록의 가치를 인정하고 199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사실 우리 조선왕국이 500년을 버티어 온 것은 임금도 보거나 손댈 수 없는 실록의 정신이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얼마나 조선 실록을 소중하게 생각했는가는 행여 화재나 전란으로 소실됐을 경우를 생각해서 강화도 정족산, 오대산, 태백산 등 여러 곳에 분산 보관한 것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사실 임진왜란 때에 많은 실록이 병화로 소실되었으나 전주에 보관 중이던 실록만은 이곳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깊이 숨기는 바람에 전후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의 기록 보관에 대한 남다른 집념으로 정부청사 이전에 맞춰 지난해 5월14일 세종시 어진동에 대통령기록관을 준공했다. 지하 2층, 지상 4층의 유리상자 처럼 특별나게 설계된 대통령 기록관은 1천94억원이라는 예산이 투입되었는데 점점 입소문이 퍼지면서 학생들의 수학여행 등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17대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들이 타던 무개차, 방탄차, 리무진이 전시돼있고 1992년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에 선물한 화채 그릇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이 받은 선물들도 볼 수 있다.

 

체험 공간의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면 청와대에 온 것과 같은 착각을 갖는데 특히 디지털로 역대 대통령 위에 스크린을 올리면 취임식부터 재임시절의 활동 모습까지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주요 기록물도 접할 수 있다. (그림 참조)

 

기록물을 보면 정부 수립후의 숨가쁜 면모를 느끼게 된다. 청산리 전투의 영웅 이범석 장군이 국무총리였고 조봉암은 그 후 사상범으로 몰려 사형 당했다.

 

또한 1949년 6월 6ㆍ25 전쟁 1년 전 농지개혁을 실시한 자료도 있다. ‘한 가구당 최대 농지소유면적을 3정보로 하고 그 이상은 정부가 유상 매수하여 다시 농민에게 유상 분배한다’ 등등….

이렇게 건국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굽이굽이를 대통령 기록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대통령 선거가 1년여로 다가오면서 대권주자들의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고 그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들 잠룡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우선 먼저 이곳 대통령 기록관에 와서 앞서간 대통령들의 모습, 그 역사적 역할을 온 몸으로 느끼고 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역사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과연 나는 대통령 자격이 있는가?”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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